이웃집에 신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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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 벨기에, 프랑스, 룩셈부르크 | 115 분 | 개봉 2015-12-24 | 청소년관람불가

소재의 참신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다. 상황 설정 만으로도 작은 대사 하나하나,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웃음을 유발한다. 게다가 성경을 비틀 수 있으니 얼마나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겠는가?

영상도 흥미진진하다. 미셀 공드리 같이 특수 효과 없이 셋트와 카메라 워크, 물리적인 연출로 즐거운 화면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과감한 판타지를 CG로 그려내기도 하면서 눈을 즐겁게 한다.

유럽 쪽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저렇게 평범하게 혹은 배우하기 어렵게 생긴 사람들의 연기력이 대단할 때가 많다. 내 모국어가 아닌 연기를 보면서 연기력이 더 좋다고 느끼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실제 다양한 영화배우를 길러내는 층이 두꺼운 유럽에 이런저런 내공 있는 연기자들이 많을 수도 있다. 어쨌건 신의 딸래미 역할을 한 배우는 정말 앞으로가 기대되는 매력과 연기를 보여줬다. 단, 노년의 카트린 드네브는… ㅠㅠ 표정 연기가 안될 정도로 주사를 쳐맞고 스크린에 나서다니… 슬프기 그지 없다.

영화를 이루는 많은 요소들이 훌륭했음에도 불구하고, 판타지적인 유쾌함에 집중한 때문인지, 설정이 줄 수 있는 효과를 극대화한 스토리였는지는 의구심이 든다. 유럽적인 배경을 공유하고 있지 못해서 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더 큰 규모로 공감하고 곱씹을 수 있는 주제가 관통했다면 정말 명작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기억에 남는 포인트 세 가지:

  1. 신은 개객기다. (가부장적 남성 인격신)
  2. 세상은 여자한테 넘겨야 된다.
  3. 어찌됐건 사랑이 구원.

개인주의자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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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지은이) | 문학동네 | 2015년 9월

에세이로서 책  내용은 개인적으로 많은 공감과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현직 판사라는 지위를 가진 사람이 책으로 표명하는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어찌 보면 통념에 반하는 것들이 가득 차 있어서 특히 더 흥미를 주는 것 같다. 그러한 흥미로움이 치기 어린 내뱉음이 아니라 깊은 고민과 성찰에서 나오는 잘 걸러진 표현들이기 때문에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이 더욱 울림을 가진다.

특히 저자가 가지는 생각의 결들이 자신의 경험에만 의존하지 않고, 인생을 만들어가며 읽은 책들과 공명하는 모습이 엿보이는 데서 존경스러움과 부러움이 교차한다. (보통 아직 큰 인물이 못된 사람들의 에세이는 이명박의 내가 다 해봤어나 다름없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다만 이 책이 소비되는 방식에서는 불편함을 느낀다. 실제 행적과 어느 정도는 무관하게 스타 이미지를 구축한 손석희의 서평이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세상이 잘못되었고,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고, 나는 깨끗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문제라는, 너무나 빠지기 쉬운 함정에 허우적대는 이들에게 공감과 안도감을 주는 마케팅 메시지가 강력하기 이를 데 없다. 이 책에 얇게 공감하는 사람들 중에 실제 저자가 내적으로 구축한 ‘개인주의’에 자기 자신을 비판적으로 비추어 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런 저런 타겟들이 조금은 두루뭉실하게 드러나는 에피소드들이지만, 그 타겟의 일면을 내가 품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더 많은 독서와 고민과 사색할 수 있게 해준다는 장점만 볼 수도 있지만, 그건 자기계발서들도 마찬가지이다. 자기계발서 열풍이 사그러 드는 추세고, 인문학 고전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틈새 위안에 호소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세상에서 자기 시각을 만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자기 시각대로 살기 위해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네메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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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 (지은이), 정영목 (옮긴이) | 문학동네 | 2015년 5월

 필립 로스의 소설 중에 비교적 짧은 분량 때문에 골랐었는데, 절필 선언 직전의 마지막 작품이었다니…

많은 후기나 해설에서 “필립 로스 답다.”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아직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흥미진진한 허구적 스토리를 요구하는 미국 독자들에게 충격적인 현실을 말하는 것일지?

더 읽어볼만한하다. 집에 사놓은 휴먼스테인이 있는데, 이전에 대표작부터 읽어봐야 겠다.

 

 

Star Wars, Sicario, 내부자들

Star Wars: 18일, CGV 여의도
Sicario: 20일, 코엑스
내부자들: 20일, CGV 강변

스타워즈 각 시리즈를 최소한 세 번 이상씩 봤던 팬으로서 프리퀄의 찜찜함을 날려버리고, 진짜 새로운 트릴로지 이상의 시작을 기대하게 하는 끝내주는 영화. 거의 모든 장면들이 스타워즈 오리지날 시리즈를 떠올리게 해서 오히려 이걸 처음 보는 사람들은 영화가 어떨지 걱정까지 될 지경.

영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이 아니라, 진짜 현실을 대고 찍은 듯한 멕시코 조폭 때려잡는 불법 CIA 작전 영화. 유치한 헨드헬드 남발 없이도 현실감과 긴장감을 극도로 살아난다. 인물 하나 하나에 대한 고민이 깊은데다가, 그걸 소화한 배우들의 내공이 출중함. 정말 잘 만든 영화

영화보다 더한 현실을 뒤쫓아 모사하는 영화. 유흥에 대한 고증이 철저하고 현실적임? 전형적인 한국식 조폭 드라마인줄 알았는데, 그거보다는 확실히 원작에서 가지고 온 설정의 힘이 느껴짐. 마지막 결말은 정말 고민 많이 하면서도 뭔가 영화적인 결말을 포기하지 못해 안타까운 지점. 우좌지간 생각보다 재미있게 봄.

책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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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서은혜 (옮긴이)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5월

전쟁이건 기업이건 문화건, 세계와 맞짱 뜨는 레벨의 견고함이 일본 작가들에게서는 느껴진다. 세대의 특징일 수 있으나, 서구의 것을 끌어들여 일본 관점에서 세계를 파헤치는데 성공적이지만, 밖으로 뻗치는 인사이트 부족이 장점이자 단점.
한국의 현재를 위해, 미시마와 싸우는 오에를 응원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보면 이 사람이 정말 일본 사람인가 싶은 정도로 온전하게 68을 거쳐 히피를 회상할 수 있는 유럽 교양인이 미국에서 동시에 길러진 사람 같은 착각이 든다. 공각기동대와 같은 일본 만화는 세계, 인간에 대해 집요한 질문과 날카로운 혜안으로 가득차 있다. 미시마 유키오와 전공투 멤버들이 동경대에서 주고 받은 대화의 주제는 문자 그대로 시대와 세계를 달린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한걸까?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을 보면 어떤 매커니즘으로 그런 확장이 가능했는지에 대한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일본인 특유의 자기를 계속 돌아보는 세심함으로 사르트르, 엘리엇을 끌어들이고 – 특히 항상 번역을 언급하며 주체적인 ‘받아들임’을 되새기는 것도 특징적 -, 작가 개인의 현실과 경험을 소설 속에 겹쳐내면서 서구의 주제가 일본의 개인에게 녹아드는 생생함을 부여한다. 그리고 소설의 사건과 플롯들은 마치 서구와 일본의 섞임같이 현실과 허구를 절묘하게 줄다리기하며 ‘세계’를 이야기하고 주장하는데 쓰인다. 특히 일본의 구전 전승, 문학의 다양한 장르(연극, 일본 전통극, 하이쿠, 희곡, 영화 시나리오, 소설과 시)를 소설 속에서 액자나 소재로 주무르고, 각각의 소재들에 시간성을 부여하며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재주는 세공의 달인같은 일본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세계를 일본으로 끌어들여 세계에 대한 질문을 농밀하게 끓여내는 솜씨는 이루 말할 데 없이 훌륭하다. 읽으면서 계속 감탄과 전율을 자아내는 경지다. 다만 오에의 방식에 국한되는 양상일지, 아니면 세계를 소화하는 일본에 걸리는 부하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안에서 밖으로 던지는 힘은 강렬하지 않다. 서구의 고전들이 세계에 던지는 강렬한 메시지들은 이 경우 소설 뒤에 은밀하게 숨어 있다. 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성 상 의도적인 표현으로 볼 수도 있다. 가르치거나 주장하기보다, 자기 이해의 과정을 보여주며 상대방을 깨치게 하는 전략으로도 보인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오에 수준의 작가가 꼰대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단단한 버팀목이라고 해도 좋다. (늙은 김지하를 보라)

소설 속에 등장하는 ‘미시마 문제’는 세계를 일본 속에서 재창조한 결과물이 얼마나 놀라운 개연성을 획득하는지 통렬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작가가 소설 속에서 끝내 감추지 못하는 예언자적 욕망을 이미 소설 속에서 소름돋게 이루어낸 것 아닌가. 2005년 발표한 이 소설의 미시마 문제에서 자유로운 2015년 선진 국가가 있는지? 주네브 조직이 현재의 ISIL의 배후에 있다고 해도 아무런 어폐가 없다. 한국에서 등장하는 극우 단체의 준동, 서북청년단의 부활이 시게가 뿌려 놓은 씨앗을 기반으로 행동에 나선다면? 프랑스의 르뺑 일가가 이끄는 국민전선 또한 주네브가 그리는 큰 그림 속의 장기말이라면?

오에와 미시마의 싸움 아닌 싸움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유이고. 오에에게 응원을 보내는 이유다. 오에 겐자부로가 그리듯이, 그것은 세계의 문제고, 일본의 문제고, 지금 내가 사는 이곳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사족: 우리나라는 세계 속에서 어떤 수준일까? 우리는 해방 이후 역사가 딱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수준이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빨갱이(혹은 미제) 타령에, 인민 학살과 내전에, 군사 독재 세력의 등장과 귀환에 매몰된 사이, 신자유주의의 충실한 톱니바퀴 구축에 매진하는 속국. 세계를 꿈꾸기는 커녕 공동체마저 분쇄된 빈곤한 문화, 동족 상잔의 경쟁.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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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옌 (지은이) | 임홍빈 (옮긴이) | 문학동네

원래 문학이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괴롭힘 당하던 일이 일상이던 곳이긴 하지만, 그렇게 압박한다고 개길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운동가나 문학가들의 정부 비판이 현재 우리나라 수준보다 살짝 심각한 중국에서 모옌의 소설들을 보면 항상 그런 상황을 비웃는 듯한 고수의 숨결이 느껴진다.

하워드 진의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라던지, 김수영의 ‘풀’과 같은 시에서 시대의 힘 앞에 개인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고민한 나름의 답을 본다. 최근에 들었던 재미있는 일화는 모 천만배우가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인터뷰 질문에 했다고 하는 답이었다. 버스 운전사가 급하게 우회전하면 승객은 좌편향될 수 밖에 없다. 라는 식의 재치있는 답변이었다. 결국 아무런 저항감도 느끼지 않고 기계적으로 마음 편한 중립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그저 시대의 힘과 결에 작은 한 표를 보태주고 있을 뿐인 것이고, 어느 쪽이든 의견을 가지려고 하는 순간 시대의 힘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결정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투표권 포기도 권리 행사 방법이다’라는 말이 귓가에 멋있게 들리는 것과 달리 자발적인 노예 입문이나 다름 없다는 것도 그런 맥락일테다.

문학이 이데올로기의 첨단 무기였던 시절부터 소설가로 경력을 쌓아 온 모옌도 시대의 흐름에 대응하는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야 했다. 민중의 이야기, 유머, 뭔가 모자란 등장 인물들, 과장된 대화, 동물과 사건들로 꾸며진 풍자 무대가 어우러진 유쾌한 이야기 보따리가 그 방법일 것이다. 소설 ‘개구리’와 같이 산아제한이라는 중국인으로서 논란의 첨병에 있는 주제를 직접 다루는 소설에서도, 주인공의 고모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놓는 구조와 등장인물, 상징적인 동물들, 초자연적인 현상, 구전 설화의 엉성함이나 초자연성 등이 날카로운 사상 검증 관리의 눈 앞에서 대놓고 속이는 마술처럼 펼쳐진다. (물론 첨예한 논쟁 주제를 다루는 소설로서 줄타기같은 균형 배분도 엄청나게 고려한 흔적이 많다.)

이 책은 중편 정도 되는 소설 3개를 한 책으로 묶은 소설집이다. 직장인들이라면 술자리에서 친구에게 무용담 듣듯이 술술 읽어볼만한 재미있는 책이다. 물론 알면 알수록 이 이야기 보따리가 얼마나 많은 말들을 해대고 있는지는 청자의 몫이고.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오에 겐자부로

고수가 세월과 함께 어떻게 더 멋있어 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마르케스.
알라딘 백자평:

오에 겐자부로,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늙음이 성숙의 한 경로가 될 수 있음을 다시 믿게 된다. 멋있다!!!!

고수가 고령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첨예한 감각을 갈고닦아 지평을 끝까지 밀어 넓히는 멋진 모습을 보여준 오에 겐자부로.
알라딘 백자평:

오에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이라는 다른 분 말씀에 백표 추가.
현실, 역사, 소설, 시, 영화, 시나리오, 구전전승, 연극이 수백년의 시간, 동서양을 넘나들며 펼쳐진다.
어떻게 노년까지 이런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김지하가 입으로 똥 싸는 사이에!

배제, 무시, 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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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식 (지은이) | 사월의책 | 2015-08-10

 

알라딘에 쓴 백자평:

대상을 누구로 생각하고 쓴 책인지 모르겠다. 전형적으로 주입식 교육을 받은 정답형 인간이 목차를 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결과물 같다. 무지한 전공 학생들에게나 할법한 꼰대성향은 덤. 깊이, 통찰, 재미, 번득임, 얇고 넓은 이해. 하나도 없다. 호네트나 읽어야겠다.

악셀 호네트가 형님인 모양인데…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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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b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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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영화를 너무 많이 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멀티플렉스가 만인의 영화관람을 이끌고 있는 시대다. 그런데도 왜 가끔가다가 정말 보고 싶은 영화를 보려면 서울 바닥을 꼼꼼히 뒤져서 내가 볼 수 있는 시간대를 찾아야 되는지… 수직적 계열화와 자본 집중으로 과점 상태에 들어가면 단순히 기업의 이윤이 높아지는 것 뿐만 아니라, 서비스의 질적인 생태계가 무너지고 결과적으로 소비자 경험의 질이 낮아지는 현상. 요란하게 말 할 것도 없이 영화의 다양성 측면에서 지금의 한국 시장을 바라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어쨌건, 영화는 즐거웠다. 제법 익숙한 얼굴들이 뭔가 연극을 하듯이 희한한 설정 속에서 자기 캐릭터를 만들고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모습도 좋고. 대중들의 눈높이에서도 충분히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감독의 기획도 즐거웠다.

같이 본 친구는 마지막 장면을 놓고 돌아오지 않은 남자 주인공으로 사랑은 없다를 표현했다고 이해했다. 나는 사랑이 있다, 없다,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좀 더 적극적으로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 정도로 봤다. ‘선택’한 동물의 삶, 가식으로 가득 차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도시의 삶, 생존을 위해 가식을 몸에 새기는 호텔의 삶, 그럴싸하지만 반작용에 그치는 숲속의 삶, 결함의 공감에서만 겨우 유대감을 싹틔우는 얇은 사람들, 주인공들의 선택 그 어떤 것도 관객에서 속 시원한 결론을 위한 객관식 선택지가 될 수 없지 않은가. 속상하면 자기가 만족할 답을 더 찾아볼 수 밖에.

유럽의 아트하우스 영화들에 이렇게 영미권 헐리우드 스타들이 참여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마리옹 꼬띠야르가 참여한 “녹과 뼈”는 헐리우드 스타의 참여라기 보다, 출세한 그 바닥 스타가 자기 근본을 되새김질하는 느낌이었지만, 이번 영화는 정말 스타들이 즐겁게 맘먹고 뛰어든 것 같은 모양새다. 대중영화의 스타들이 ‘연기’라는 예술 영역을 넓히고자 하는 참여도 좋지만, 결국 영화는 상품이기에 그런 상품의 생산 – 소비가 가능한 구조가 사실 더 부러울 뿐이다. 스타들은 먹고 사는 문제가 없으니, 이런 것도 해볼까? 하고 시도할 수 있으나, 아트하우스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이런 영화가 계속적으로 먹고 살 수 있는 구조를 제공하지 못하면 살 수가 없다. 다양하고 독특하고, 무엇보다 수준 높은 아트하우스 영화들이 존재하며, 헐리우드 스타까지 유혹하는 기반이 되어 있으니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나 멀티플렉스를 점령한 영화들이 한결같이 한국형 소재들과 코믹 – 감동 스토리를 엮어내기만 하는 상황에서, 정말 영화같은 영화가 갈증나기 때문에 더더욱 부러울 뿐이다.

배경 지식의 얕음에서 오는 우문일 수 있으나, 영미권(물론 영어를 쓰는 프랑스인도 두 명이나 등장하지만) 백인 배우 일색인 점, 여자와 남자의 역할을 우스꽝 스럽게 바꾸긴 했지만 전체적인 상황 속에서 설정을 주도하는 우스운 여성성으로 표현된 느낌 등 몇몇 불편하거나 아쉬운 점들도 있었다.

거창한 거 다 치우더라도, 좀 더 다양한 영화를 손쉽게 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