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RIKA

<Perfect Blue>에 이은 콘 사토시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기본적으로 인간성에 대한 대책없는 낙관을 깔끔하게 도려낸 쿨한 세계를 멋지고 예쁘게 그린다. 그 속에서 발랄하고 극단적인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더 생생하게 살아난다. 파국을 아슬아슬한 수준까지 밀고나가면서 장르 영화의 빛도 발한다. 대체로 행복한 결말로 끝나지만, 그것은 결코 정반합에 따른 전진이 아니다. 그저 과잉에 대한 과잉의 맞대응으로 균형을 다시 회복한 것 뿐이다. 어떤 경우에 그 균형은 구조가 만들어낸 수많은 파국 중 하나만의 해결일 뿐이다. 문제를 만들어낸 것들은 변하지 않은 채로 그 세계 다른 어딘가에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서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성장한다. 개인의 작은 진전만이 그 커다란 파국을 겪은 대가다. 지금까지 본 두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특징들이다. 관점 자체가 내 취향에는 매력적이다.

영상을 보면 영화를 훨씬 뛰어넘는, 그 매체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장면들이 눈에 띈다. <너의 이름은>의 경우 <라라랜드>처럼 사실적인 장면들에 기가막히게 상상력을 녹여 넣었다. 사실적인 장면들도 만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각도, 화면 배치와 이동을 보여준다. 반면에 파프리카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류로 보일만큼 찬란한 상상력을 화면 가득히 펼쳐놓는다. 거기에 이미지를 폭증시키는 음악까지 완벽하다. 강렬한 대상 이미지가 지배하는가 하면, 동선이 앞서 나서기도 하고, 음악이 흐름을 뒤덮다가, 결국 현실과 동떨어진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깨달음이 뒷통수를 친다. 영화의 백미나 다름없는 퍼레이드가 그렇다. 온갖 종교, 쾌락, 은밀하거나 은밀해서 왜곡된 욕망, 가지지 못한 것들이 정신없게 떠들썩한 산더미가 되어 퍼레이드 한다. 그 행렬을 만나면 인간은 주체할 수 없이 욕망 그자체로 변신하여 전체의 일부가 된다. 그러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다. 죽음만 건너면 바로 눈 앞의 천국이 나에게 오지만,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괴상한 지옥의 현현이 된다. 은유도 아니고 직유도 아니고 세밀화가의 묘사나 다름 없는 장면이다. VR에 접속한 군집으로서 인류를, 아직 거기에 다다르지 않은 우리에게 설명하는 가장 현실적인 묘사로 봐야 하지 않을까. 매트릭스에 접속해서 재배되고 있는 인류를 묘사한다면 영화 매트릭스의 장면이 아니라 바로 이 파프리카의 행렬이어야 할 것이다. 신카이 마코토와는 결이 다르다고 볼 수 있지만, 내 눈에는 격이 다른 천재로 보인다. 훨씬 강렬하고 폭발적이며 신랄하다. 멋지다.

이런 귀한 재능이 병마에 단명한 육체의 한계로 미처 만개하지 못한 것이 정말 안타깝다.

몇몇 인상적인 화면캡쳐들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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