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qui de Sade

제목과 상관없는 포스트.

그야말로 혹시나? 하는 기우일 뿐이지만, 생각난 김에 기록해 놓는다.

이 블로그는 사실 상 외부로 열려있는 블로그라기보다는, 개인의 일기장에 가깝다. 굳이 외부 오픈을 막아놓지 않았다뿐이지, 조회도 거의 없고, 쓰는 내용도 외부의 독자를 향한 것이라기 보다 글쓰기 연습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어쩌다 웹검색을 타고 들어오는 트래픽들이 간간히 있다. 일주일에 서너명 정도가 들어와서 한 번 읽고 나간다. 그정도.

그런데 얼마 전까지 재미있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사드 후작의 <미덕의 불운>에 대한 짧은 책 후기 포스트에 사람들이 구글 키워드 검색으로 종종 들어오는 것이다. 희하한 일이다. 어떤 키워드인지는 보이지 않지만, 제목이 ‘사드, 미덕의 불운’으로 되어 있고 태그에도 사드가 있으니 아마 ‘사드’를 키워드로 들어오는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때는 온 나라가 THAAD로 난리가 나던 때였다. 그때는 사람들이 사드에 관한 글을 미친듯이 찾다가 여기까지 흘러들어오는구나 했다.

그런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어 구글에 사드를 검색해봤다. 미국 구글, 한국 구글, NCR로 설정한 구글 등을 다 들어가봤다. 그런데 내가 쓴 포스트가 나오려면 몇 페이지를 건너가야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찾지 못했다. ‘사드 미덕의 불운’이라고 모든 단어를 쳐 넣어야 내 포스트가 첫페이지에 나온다. 뭔가 이상하다.

옛날에 네이버에서 근무할 때 하루에 유입되는 검색어 수를 살펴본 적이 있다. 검색 이용 건수야 셀수없이 많지만, 실제 입력되는 검색어 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겨우 500여개의 개별 검색어가 하루에 입력되는 전체 검색 건 수의 90% 가량을 차지한다고 했다. 전국민이 거의 똑같은 검색어만 하루종일 주구장창 입력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조금은 나아졌을지 모르겟다. 어쨌건 그래서 네이버와 구글은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다르다는 결론을 냈었다. 500여개 검색어면 중국 교포를 써서 하나하나 대응 페이지를 손으로 만들어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검색 로직 따위… 구글이 가지는 중요성과는 천지 차이다. 그러면 이런 환경에서 사드 후작과 그의 작품을 검색하는 종자가 거의 2주에 한번씩 내 포스트에 들어올만큼 많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500여개는 거의 대부분 그날 화재에 오른 검색어들이거나 연예 쪽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증거는 하나도 없다. 하지만 500여개 관심사로 하루가 갈무리되는 한국에서, 제대로 번역된 작품도 몇 개 안되는 사드 후작을, 조회수도 안나오는 블로그의 포스트를 찍어서 최소 2주에 한 번 들어온다는 건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 국정원이건 십알단이건 어디건 이슈가 되는 검색어 중심으로 어떤 내용들이 웹에 떠도는지 기계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 아닐까? 네이버야 쉽게 조절 가능할테지만, 구글의 경우에는 몇 페이지까지 나오는 것들 다 살펴봐라! 이런 명령에 따라 디벼보는 건 아닐까? 우습게도 박근혜 최순실 개판이 나기 시작하면서 사드 포스트에 대한 조회는 뚝 끊겼다. 미사일 사드에 대한 이슈도 잦아들었겠지만, 사드 후작에 대한 관심도 그 즈음에 같이 끊길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이명박 때부터 국정원을 위시하여 청와대까지 감청에 기반한 사찰이 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제 아비 곁에서 이런 협잡을 보면서 컸을 박근혜가 국정원을 그냥 내버려두었을리 없다. 감청이니 도청이니 하는 말들이 나온다. 말도 안되는 상상 같지만, 이미 말도 안되는 루머들이 사실로 밝혀진 것이 상식을 압도한다. 분노보다도, 사드를 찾다가 내 포스트에서 잠시 교양(이라고 쓰고 변태라 읽는다)의 일격을 맞았을 그 분들에게 느끼는 동정이 앞선다.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다음 생에는 사람답게 살기를 기원한다. 아울러 미덕의 불운이 아니라 그 쌍둥이 소설인 <악덕의 번영>을 직접 살고 계신 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설날

새벽에 시금치 데친다고 설치던 아내가 냄비를 쏟는 바람에 화상을 입고 난리가 났다. 보름이가 들어선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진짜 조심해야 되는 시기에 날벼락같은 일이다. 울고불고 난리가 나서 샤워하다 알몸으로 뛰쳐나와 온갖 법석을 떨었다. 응급실을 두 군데나 가고 나서야 드레싱하고 안정을 취한다.

어렸을 때 이후 처음으로 한복입고 온 가족이 사진 찍을 일에 두근거렸을 엄마네는 물론이고, 조금이라도 일찍 와서 일가친척과 좋은 소식 나누려던 장인장모도 많이 놀라고 속상하셨을거다. 어제부터 혼자 하이퍼 모드가 되서 고집피우고 방방 떠다니던 아내가 그야말로 사고 한 번 크게 저질렀다.

아직 심도는 확정할 수 없지만 기본 2도 화상이라는데. 많이 아플 것 같아서 속상하고 아프다. 이 와중에 나는 오랜만에 찾아온 몸살감기까지 걸려서 아주 설날을 부산스럽게 만든다.

좋은 소식 가지고 잔뜩 들뜬 모양새였는데 별 일 없기를 바라며 조용하게 설날 저녁을 보내고 있다. 푸닥거리를 심하게 해서 그런지 어지럽고 나른하다. 몇 주 고생하겠지만 화상은 나아질 것이다. 보름이가 괜찮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시금치 데친 건 먹을 때마다 생각날 것 같다.

여기 사람이 있다

어제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구룡마을 개발을 환영한다는 배너가 여기저기 걸려 있는 걸 봤다. 


거기 사람이 살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30년간 방치했었다니.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서 내내 살고 있었을텐데. 수해가 나면 큰 피해를 입으며 죽지 못해 살던 사람들의 터전일텐데. 그 사람들을 쫓아내려고 그렇게 기를 쓰고 건물을 무너뜨리고, 깡패를 동원하고 그랬을텐데. 거기 있는 사람들의 욕심을 끌어내어, 만천하에 비웃음 거리를 만들어 돌팔매질 했을 텐데? 그걸 다 잊고 그저 30년간 방치되었던 땅인양 개발 환영을 외친다?

개발 사업이 한국 사람들의 인생과 가치관에 미친 영향은 아마 거대한 환경적인 요인을 넘어설 정도로 근본적이고 전방위적일 것이다. 수많은 패륜과 악행과 욕심의 충돌이 부동산 개발 때문에 벌어졌다. 옮겨 적기도 민망한 꼴들이 속출한다. 그런 아수라장을 건너고 난 승자의 자기 합리화는 저런 모습일테다. 사람이 있었다는 걸 아예 잊은 모습. 망나니같은 본인들의 과거를 거기에 희생된 사람들과 함께 묻어버리는 모습.

이렇게 자살과 살인을 반복하는 사람들이 정상일 리 없다. 그래서 강남구에서는 정신 장애인들이 주구장창 국회의원, 구의원에 당선되나보다. 슬픈 일이다.

강남구민들에게 <여기 사람이 있다> 일독을 권한다.

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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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하게 어긋난다는 걱정이 들기 시작할 때, 상상도 못한 행운이 찾아들었다. 남들보다 늦게 겪느라 그런지, 어느 것 하나 복잡한 심상 없이 쉽게 와닿지 않는다. 지난 시간의 많은 일들이 감정을 만들고 또 앞으로 일어날 엄청난 일들이 흥분을 만든다. 무엇이든 언제나 그렇듯, 시작은 아름답고 행복하다. 인생이 흘러간다는 것이 손가락 사이로 사르륵 빠져나가는 물살을 느끼듯이 그렇게 간다.

또 한 걸음 나아간다!

 

읽은 책 업데이트

<악마기자 정의사제>, 함세웅, 주진우

원래 대담집을 돈주고 책으로 사려면 사르트르, 촘스키, 손택, 아렌트 정도 되어야 해볼만한 일이다. 책이라는 형식이 강요하는 시선의 깊이나 논리정연한 서술이 대담집이라는 허울 하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사상이 깊고 논리적인 사람들, 특히 그런 사람 둘이서 서로 생각을 나누는 대담집 정도 되어야 돈주고 책으로 살 만 하다. 역시나 내용은 그냥 앉은자리에서 두배나 세배속으로 소위 토크콘서트를 넘겨보는 정도다. 그래도 주진우 기자가 책 판 돈을 군자금으로 쓴다길래 샀다. 함세웅 신부가 쓰는 단어들을 보며 내가 얼마나 자기검열을 내면화했는지 섬뜩하게 깨닫게 된다. 북한이 우리 민족이라던지, 목숨걸고 항일운동 하던 사람들이 분단 이후 빨갱이로 몰려 이승만 일당에게 죽임을 당하던 역사, 박정희에 대해 당연히 내려졌어야 하는 역사적 평가 등이 활자화된 것만 봐도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 하다.

 

<소년이 온다>, 한강

김 숨의 <한 명>에 이어 도저히 전철에서 읽을 수 없었던 책. 요즘 왜이리 이런 책들이 걸려들어서 사람을 망신시키는지 모르겠다. 흔히 하는 우스갯소리로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에게 ‘소설 쓰고 앉아있네’라고 눙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다큐라고 해야 옳겠다. 작가 본인의 경험, 기억의 조각, 역사적 사실, 역사의 기억, 피해를 입은 집단의 기억과 아픔을 절묘하게 엮어서 소설의 형식으로 매어 놓았다. 이 책이 주된 이유가 되어 작가가 소위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광주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사회가 무슨 미래가 있을수 있을까. 자신을 보수라 부르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과거와 전통이 광주를 짓밟은 자들에게 있는 것이라면, 그래서 광주를 다룬 예술작품마저 좌파 낙인을 찍어 탄압하는 것이라면, 난 그들의 눈 앞에서 경멸과 멸시를 담아 침뱉아줄 것이다. 광주의 동호가 빨갱이라면 난 빨갱이 중에도 악질 빨갱이가 되고야 말겠다는 헛된 분노가 넘쳐흐른다. 광주를 이야기하는 예술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져야 한다. 친일보다 먼저 극복해야 할 것이 광주다. 광주를 똑바로 응시한 후 거울에 비칠 괴물이 무서워서, 끊임없이 외면하며 역사를 왜곡하는 것들. 그런 인간만도 못한 것들이 불행한 말년에 몸부림치다 헛되이 죽어버리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스파링>, 도선우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이다. 식상한 주제를 투박한 문장으로, 소설적 기법의 미숙함 속에서 묵직하게 풀어냈다. 문학계에서 닳고 닳은 느낌이 전혀 없다. 경쟁에 오른 작품들의 대진운도 따랐겠지만, 이런 멋진 이야기를 떨어뜨린다는 것도 심사위원들에게 내키지 않는 일이었을 것이다.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한 말이 아주 인상적이다.

『스파링』은 나를 두 번 놀라게 했다. 첫째, 고아 소년이 학교에서 주먹을 휘두르다 소년원에 가서 권투를 배우게 된다는 이 낡고 닳은 소재를 2016년에 읽게 되다니. 둘째,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다니.

 

 

 

오늘의 한국 사회를 만든 Tri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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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다 이거!

검찰, 언론, 재벌이 제일 무섭다는 생각을 한다. 이 상황을 만든 것도 저 세 부류고, 뒤집은 것도, 뒤집은 이후 상황을 주도하는 것도, 그리고 사태 이후 사회를 만드는 것도 저 세 부류일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모호한 개념보다 저 삼발이 세력이야말로 훨씬 구체적인 육체를 지닌 한국의 모습이 아닐까. 국민들이 응원하는 특검, 영웅으로 등장한 jtbc, 청문회에 불려나온 우리 삶의 회장님들.

검찰(과 그 부속물 경찰)언론(그리고 모두의 뒤에 숨은 재벌). 이 두 세력은 나라와 정권을 바꿔가면서 일관되게 살아남는 가장 근본적인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 틀이다. 두 조직 모두(검찰은) 일제시대에 가장 적극적인 부역자들을 모아서 탄생했다.  조선에서 가장 똑똑한 엘리트 중에 도덕률 없이 동시대 구성원들을 짓이기며 살아가고자 결심한 이들, 그리고 레거시 없이 세상이 뒤바뀔 때 앞잡이로 나서서 역전을 노린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이다. 한국의 모든 제도적, 물리적 국가 기반들이 전부 일제시대의 것들을 그대로 비판없이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언론이나) 다른 부문도 매한가지이다. 그러나 검찰과 언론은 자체적으로 정화할 기회를 매번 피해가며 현실 권력의 옆구리에 붙어서 변화 없이 살아남은 거의 유일한 조직이다. 금융기관이 금융기업이 되고, 국부 혹은 총독이나 다름없는 대통령이 민선으로 바뀌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일정 수준 발전을 하는 와중에도 민주주의 국가를 이루는데 필수적인 저 두 집단은 한국에 특화된 태생적 성격을 바꾸지 않고 살아남는다.

일전에 어떤 사람이 일갈한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우리나라에는 아주 유사한 운영 원칙을 공유하는 조직이 몇 개 있다고 한다. 조폭, 언론, 금융기관, 검찰. 전문직의 일반적인 특징들 (자격 획득을 위한 절차, 사회의 특정 영역에 면허나 유사한 권리 보유 등)에 더해서, 기수 문화가 있고, 외부 인력의 유입이 봉쇄되어 있으며, 조직의 장을 특정 기수가 맡게 되면 그 기수 위의 선배들이 한방에 용퇴하는 행태가 그것이다. 금융은 기관에서 기업으로 전환하며 새로운 시대의 논리를 주도하고 고 있고, 심지어 조폭도 과거의 운영방식과 달라졌을 것이다. 언론은 기술의 진보에 도구적 매체 개념이 와해되는 변화를 겪으면서도 다른 패거리들보다 적응이 느리다. 검찰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요즘에는 조폭보다 더 조폭같다.

일개 시사 주간지 기자가 턱없이 부족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발품으로 얻어낸 정보들을 대형 언론사들은 보도하지 않는다. 단순히 보도하지 않는 차원을 넘어 현실권력에 더 적극적으로 부역한다. 또 그것을 넘어,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듯이, 현실 권력을 만들어내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언론에 대해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MBC와 KBS가 언론이라 부르기 어려운 나락으로 떨어지고, 종편이 어젠다를 혼란케 하고, 3S가 시민 관심사의 대부분을 낚아채 간다. 정권과 연결, 재벌과 연결은 소위 ‘보수’라고 부르는 극우 수구파가 집권했을 때마다 그 강도를 더해만 간다.

검찰도 무섭도록 같은 길을 걸어왔다.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엄연한 현실은 검찰의 책임이 더 무거워 보인다. 법원은 그나마 판사 개인의 의견을 보호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사회의 변화를 조금씩 반영하며 전진해 나간다. 그러나 검사동일체라는 소름 돋는 강령을 따르는 검찰은, 수십년전 잘못된 과거가 재심을 거쳐 무죄가 날 때조차 과거 구형을 바꾸지 않는다. 현 시점의 모든 검사를 넘어, 일제시대와 독재정권에 부역하던 검찰 조직과 동일체라는 인식은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검찰과 함께 일제의 통치 도구나 다름없던 순사들이 그대로 채용된 경찰 조직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마치 박근혜가 최순실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듯이, 정치권, 검찰 등의 지시에 따라 전략과 활동의 경중을 결정하는 충실한 개다.

행정부 관료들이야 원래 영혼이 없기로 유명하다. 정치인들이야 정치공학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게다가 한국과 같은 교화되지 않은 우중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국가에서 선출된 정치인들이 어떤 수준을 가지는지는 그들 탓만 하기 어렵다. 그러나 명백한 사실을 전달해야 하는 언론과, 실체적 진실에 기반해 죄를 기소해야 하는 검찰이 그 근간을 완전히 무시하고 조작하고 마음대로 재단하며 업을 살아내고 있다는 점은 가장 용서할 수 없는 죄라고 생각한다.

검찰은 다시 단 한 톨의 반성이나 변화의 의지도 없이, 목줄 풀린 개처럼 주인을 물어뜯고 있다. 그것도 다시 목줄을 잡을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농반진반의 제스쳐를 과장하고 있다. 최순실이라는 한 개인을 악의 근원으로 몰아서 흥분하는 건 쉬운 일이다. 야권의 정치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책임을 공유해야 마땅한 정치세력과 언론과 검찰에 대한 메시지도 만들지 못하고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앞으로 그들은 다시 역사를 반복하리라는 강력한 신호다. 큰 그림보다 눈 앞의 이익에 집착할수록 백년을 넘게 썩어가고 있는 그들에게 다시 잡아먹힐 운명은 절대 바꿀 수 없다. 결국 내년에 어느 누가 정권을 잡건, 아무런 진보는 없다. 우리가 미국의 미래임을 트럼프 당선으로 증명했듯이, 이제 그 길의 끝에 무엇이 기다릴지 세계를 이끄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나름 이것도 국격이라면 국격일테니, 이명박근혜 정권의 최대 치적이라 하겠다.

재벌 문제는 조금 더 까다롭다. 좌파 진영에서 습관적으로 악마화하는 ‘신자유주의’가 한국에서는 재벌이라는 특징적 형태로 두드러진다. 원래 해야 하는 역할, 혹은 서구 선진국가에서 옛날 옛적 언젠가 찬란한 날을 가졌던 역할, 이도저도 아니더라도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역할을 내팽게친 검찰과 언론과 다르다. 자본은 이들보다 훨씬 전방위에서 복잡한 양상으로 우리 삶에 깊숙히 개입해 있다. 돌 던지기 딱 좋은 삼성가 세습 문제를 때린다고 어떤 가치가 실현되는 건 아니다. 어떤 가치를 위해 재벌을 공격하는가를 고민하고 공론화할만큼 우리 사회는 내공이 쌓여있지 않다. 백혈병 사망자 연대부터 대기업 중심 경제에서 내몰린 서민들, 그리고 장하성, 장하준까지 재벌 행태에 대해 비판하는 한 줄에 서 있는 괴상한 광경이 바로 그 증거다. 후진국의 국가주도 경제 하에서 성장한 기업집단, 특히 주식회사의 탈을 쓰고 창업주 일가가 불투명하고 비정상적 운영 행태를 보이는 현실은 분명히 큰 문제점이다. 군사 쿠데타 정권 때부터 잘못 들어선 길을 바로잡아야한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검찰, 언론과 한 통에 묶었다.

특검도 검찰이고, jtbc도 중앙일보이고 보광이다. 삼성은 여전히 최강자고, 가전제품 엘지로 갈아 탄다고 맘은 조금 뿌듯할지 모르지만, 결국 지갑만 더 허물어질 뿐이다. 그렇다고 구조를 바꾸자고 나설 수 있겠는가. 그저 기억이나 하고, 나중에 이 트리니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정신 차리고 돌아봐 줄 수 밖에. 개인적으로 검찰, 경찰은 차기 정권이 김매기 수준이 아니라 밭 갈아엎기 한 번 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테러 주범과 종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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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누구??

조윤선씨가 세월호 반대집회와 유가족 겁박에 직접 관여했다고 한다. [한겨레 기사]

일베와 어버이연합, 그리고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잘못된 시그널을 보내는 일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 패륜적인 행태에 동조하거나, 혹은 방치하거나, 혹은 무기력한 염증을 내보이는 시민들의 문제가 더 크다고 생각했다. 정권 차원에서 이런 일을 기획하고 실행을 관리하고 금전적 지원을 했다는 것은 내 깜냥에서 상상하기 어렵다. 이건희씨가 창녀들을 불러다가 그룹 섹스를 했다는 이야기보다도 훨씬 비현실적인 영역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제일 먼저 분노를 느낀다. 정확히 말로 짚어내지 못하겠지만, 무언가가 무너지는 느낌이 든다. 더 현명하게 어른이 된 사람들은 이런 경험을 먼저 하고 잘 받아들인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럽고 또 부럽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벌이는 패륜과 같은 일에 시야가 아득하고 까맣게 사라진다. 그리고 마음이 아프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벽과 가시에 부딪히고 찔리면서 지금까지 어떻게 버텨왔을까. 저렇게 작정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힘있는 자들과 대적하면서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을까. 그리고 그런 자들에게 선처를 구해야 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절대 그들의 아픔에 다다를 수 없겠지만 작은 공감만으로도 가슴이 무너진다. 그러면서도 변화해야 할 지점이 더 분명하게 좁혀지는 것 아닌가 하는 긍정도 한다. 모든 것에 대한 불신으로 내 세계를 망가뜨리는 일보다는 바꾸어야 할 것에 힘을 쏟는 건 사람을 살아가게 할 것이다. 그들의 삶이건 우리의 삶이건 의미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재용씨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다는 소식을 보며,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일 것인가 하고 좌절한다. 그들을 지적하고 벌하고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 사회를 고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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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투가 궁금하다.

삼성가 황태자의 구속영장 기각을 보며 오래 전 장면이 떠올랐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결이 막 나왔을 때다. 헌법재판소는 조선시대 이후 600년이니 국민적 컨센서스니 경국대전이니 미친 소리들을 가져와 관습헌법으로 성문헌법을 깔아뭉개는 희대의 논리를 개발했다. 소피스트의 궤변이 꿈꾸던 경지 아닌가 싶다. 도대체 국가가 무엇이길래, 헌법 하에서 국가를 구성하는 물리적인 실체로 수도 지정을 가져오고, 이전 불가 결정의 근거로 관습헌법이라는 기형아까지 창조하는 무리수를 둔다. ‘우리말’이라는 법조항을 관습헌법에 따라 한국어로 본다는 예를 든다. 그럼 600년 이전의 우리나라 수도는 어디인가. 역사까지 뛰어드는 건 국수주의 수구들의 기본 취향인가. 노무현 정책에 대한 반대, 서울과 수도권 땅값, 집값 하락에 대한 지주들의 저항말고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다. 당시에 법대에 다니던 친동생은 물론 사법고시를 준비하거나, 이미 패스해서 검사, 판사를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한결같은 답은 ‘법리적으로 옳다’는 것이었다. 말하지 않는 괄호 속에는 ‘너는 잘 모르겠지만’이 있다. 기가 찬다. 지능과 학습능력 측면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전문가 영역을 구축하고, 그것을 무기로 삼아 휘두르는 꼴의 핵심 작동 기제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하면 어쩔건데? 하는 자신감이 뚝뚝 듣는 소름 끼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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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신지?

아마 삼성 상속자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도 법리적 궤변이 있을 것이다. 이천 얼마인가를 떼먹은 운전기사를 해고하는 것은 정당하고, 재벌가 상습 범죄자들을 보호하는데 앞장 서 왔던 그 판사가 바로 독재정권의 편에서 고문과 조작을 용인하고 노동자와 서민을 겁박하며 기괴한 논리로 대통령의 업무 수행을 방해하던 그들이다. 그 친구들로는 일제시대부터 잘 훈련받은 사냥개들인 검찰과 경찰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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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릅니다. –> 모립니다.

고문을 모른척하고 조작을 주동하고 민주적 가치를 온몸을 다해 탄압하던 김기춘씨가 아마 이 패륜의 맨 윗단계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이 정도 인간이라면 꼭 누가 시켜야 나쁜 짓을 하는 그런 평범한 수준은 아닌 것 같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정신질환자가 시켜서 움직일 사람으로 보이진 않는다. 아마도 악질 범죄자라기보다는 종교적 극단주의자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블랙리스트, 적군리스트를 김기춘씨가 직접 시켜서 했다고 조윤선씨가 자백했다고 한다. 특검이 어디까지 갈 지 모르겠지만, 법적 처벌보다도 시민 인식 전환에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서서 촛불을 들고 가만히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큰 난리법석이 난다. 우리가 가진 힘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반기문 소동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늙은이들 노망난 걸 이용해 먹는 거 좀 그만 해야되지 않을까 싶다. 충청도에서 무슨 귀인에 위인을 만들어놓더니, 이제 궁지에 몰린 수구 세력이 다루기 좋은 퍼펫으로 급하게 키우는 모양새다. 박근혜 이후로 내용과 상관없이 이미지 폭격만으로 뭔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든 걸까. 이러기도 쉽지 않은데, 에러가 나건 말건 대차게 밀어부치는 힘이 느껴진다.

반기문 코스프레 특선:

올리고 나서 발견한 또 다른 작품: 수첩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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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업데이트: 방명록 핫팩 의전과 퇴주잔 원샷

매일매일 끝나지를 않고… 문제는 더 커져만 간다.

지체없이 건배 후 완샷하는 모습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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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명박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데… [여기 참조]

코스프레 아무리 잘해도 아무것도 안된다는 선례가 있어서 우려스럽다. @@

물론 코스프레 계의 대가 손옹은 이 정도뿐만이 아니다… [여기 참조]

이 나라 수준이 만천하에 드러난 지금 반기문이 된다 한들 모래성에 첨탑 한 덩이 더 얹는 것이나 뭐가 다르겠는가. 무너뜨릴 사람이 아니면, 혹은 무너뜨릴 각오가 없다면 다 부질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