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통제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해서 한 말들…

출처는 한겨레. 이거 법적으로 문제 안되는 건가? 어버이연합 시위가 관제 시위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그럴거라고 알고 있지만, 막상 증거를 보면 숨이 탁 막히게 된다.

주말 포식

트라토리아 모로

한적한 선릉 뒷편에 있는 스페인? 이탤리안? 레스토랑이다. 한 번쯤 가볼만 하다. 하지만 음식에 비해 약간은 가격이 비싼듯. 샐러드는 너무 자르지 않고 나온데다가, 엔초비는 먹기에 너무 적은 양을 놓아서 약간 당황스러움. 가지요리는 내 불찰로 덥썩 물었다가 식사 내내 벗겨지는 입천장과 싸움. 미트소스는 그야말로 어머니가 집에서 고기 갈아서 해주시던 주홍색의 그것. 비싼 돈 내고 먹는 뭔가 레스토랑 스러움보다는 딱 집에서 만든 것 같은 맛. 삼겹살 스테이크는… 질 좋은 삼겹살로 뭣을 하던 맛이 없을 수가 있는지! 아주 훌륭했다.

 

본수원 갈비

IMG_2010미국 소고기를 쓰기 전까지 시간을 내서 수원까지 내려갈 정도로 좋아하던 갈비집이다. 미국 소고기를 쓴 이후에는 수원갈비라 할 것도 없어서 방문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외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 뵙느라 어쩔 수 없이 수년 만에 방문을 했다.

양념갈비를 먹었는데, 양은 많았지만 고기가 예전같이 않았다. 고기 냄새가 나는 경우도 있고, 게장에 쌈채소에 푸짐하던 반찬거리들은 더 깔끔해 진 것 같지만 예전보다 낫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주변을 살펴보니 생갈비를 먹는 사람들이 많다. 한우 생갈비는 미리 주문하지 않으면 못 내놓는다고 써 있더니, 이제 생갈비도 미국산으로 싼 가격에 내놓고 있어서 그런것 같다.

여튼 오랜만에 무지막지하게 큰 갈빗대에 붙은 고기를 벗겨내서 턱이 빠지도록 씹어대기도 하고, 그 갈빗대가 풍덩 들어가서 소금과 지방의 끝없는 하모니를 보여주는 된장찌게도 불판에서 펄펄 끓이며 밥 한그릇을 뚝딱 비웠다.

 

독천 낙지골
IMG_2020

저 수조에 가득찬 씨알 굵은 낙지들을 보라!

말이 필요 없다. 귀해서 어른들만 드시던 낙지 머리와 몸통 자른 것들이 젓가락에 치일 정도로 넉넉히 나오는 거대낙지들이다. 초무침, 연포탕과 탕탕비빔밥을 먹었다.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술안주들이라, 오랜만에 소주를 탈탈 털어넣었다. 다음날 하루종일 떠도는 양념냄새는 갈비와 낙지를 점심, 저녁으로 먹은 자가 견뎌내야 하는 왕관의 무게같은 것. 배가 터지는 주말이었다.

고리오 영감

고리오영감 전자책으로 처음 본격적인 장편 소설을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으로 시작했다. 짧은 글들로 구성된 책들은 전혀 무리없었으나, 장편 소설은 어떠할지 걱정도 됐었다. 그런데 전혀 무리없이, 긴 글을 읽는 긴장감이나 몰입감이 종이책이나 다름없이 더해지며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빈칸 넉넉하게 쓰는 한글판 양장본으로 330여 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장편 치고는 짧은 소설이었기 때문에 좀 더 수월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발자크 소설이 거의 그렇듯이 지루하다 싶을 정도의 묘사로 초중반의 이야기를 끌고가는 특성 상 제대로 몰입하지 않으면 읽기 어려울 수 있었음에도 문제없이 술술 읽었다는 것이 성공적이었다. 이런저런 개인적인 일들이 터져서 한 권 다 읽는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좌지간 앞으로 전자책을 좀 더 활용할 것 같다. 활자 너무 크고 두껍고 들고다니기 어려운 양장판의 트렌디한 책들은 어지간하면 전자책으로 사야겠다.

대학교 때 문학을 전공하면서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많은 현대적인 이미지나 예술적 주제들은 많은 경우 근대의 어떤 천재가 열어젖힌 문을 통해 쏟아져 나온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천재들은 그보다 앞선 다른 천재들의 토양에서 반복과 변주, 그리고 그 틈 사이에서 뽑아낸 천재성을 버무려 항상 큰 문을 만들어 냈다.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이나,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 역사를 보면서 소설이 어떤 세계관의 특정 지점에 대한 묘사라면 바로 저렇게 여러 작품을 통해, 혹은 평생을 걸쳐 그 세계의 이곳저곳을 기록하는 것도 정말 훌륭한 접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접근에 있어서 오노레 드 발자크가 바로 그 선지자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의 세계관에서 사거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작품이 바로 고리오 영감이다.

우리는 항상 인생에 뭔가 더 심오한 것들, 뭔가 더 나은 것 혹은 미래, 내 안의 더 선하거나 능력있는 자아가 숨어 있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속이며 살아간다. 수 많은 문학작품들이 보여주는 세계의 번득이는 진실들, 그리고 자기 인생의 적나라한 실패와 좌절의 경험들을 그대로 소화하지 않고, 뭔가를 발견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한다. 그러나 사실은 인생은 고리오 영감과 외젠이 살고 있는 하숙집이나 보세앙 부인이 속한 상류사회나 모두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선택을 계속하는 인간들을 벗어나지 못한다. 간혹 이런 비참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고리오 영감과 같이 맹목적인 어떤 것에 대한 신앙에 빠져서 인생을 더욱 비참하게 끌고 가거나, 아니면 보세앙 부인처럼 결국 사회적 고리를 끊을 수 밖에 없는 궁지에 몰리게 된다. 많은 예술작품들이 누설하고 있는 세계에서 삐져나온 진실은 강렬하게 자기 기만을 걷어낸다.얼마 전에 봤던 사드의 미덕의 불운이 그 가장 노골적인 선언이 아닐까. 사실을 직시하되 좌절하지 않고 계속 저항하는 것이 가장 인간적인 모습임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나의 독서는 항상 카뮈로 이렇게 돌아가곤 한다.

개인의 경험과 상태에 따라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는 소설이야 말로 고전의 자격을 증명한다. 언젠가 다시 낙관에 차서 인생의 황혼을 맞이할 수 있다면, 고리오 영감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 그 전까지는 모쪼록 외젠의 승리를 기원하며 발자크의 소설 세계에 빠져봐야 겠다. 힘든 시기에 즐거운 힘을 준 독서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안톤 체홉의 단편소설집.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인지, 여자인지 여인인지 출판사마다 다르게 표기한다. 러시아어 원제에는 어떤 느낌에 가까울지 궁금하다.

단편 소설은 체홉이 만들어 내고 체홉을 벗어나기 힘든 그런 영역이라고 한다. 당연히 재미있고 인상적이었다.

슬슬 이북에 대한 적응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좀 더 긴 것들을 읽어보려 한다. 너무 두껍거나 하드커버가 부담스러워서 읽기 애매했던 고전들부터 시작해야겠다.

우선은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역전회관

말도 못하게 맛있다. 다만 양념이 쎈지 다음날까지 마늘, 고추 냄새와 싸워야 하는 건 함정. 그래도 정말 가볼만한 맛집임에 틀림없다. 낙지구이도 기대된다. 마포 사는 사람들 부럽다. @@

사드, 미덕의 불운

미덕의 불운.jpg  그 이름만(?) 유명한 사드 후작의 책을 처음으로 읽어봤다. 제목조차 냉소의 찬 기운이 느껴지는 미덕의 불운! 1787년 작이다.

전자책의 좋은 점이 이런 것이다. 종이책을 들고 다니면서 보는 것은 전시적인 기쁨도 주지만, 어떤 책을 전시할 것이냐에 대한 복합적인 판단을 강요한다. 자본주의의 대안을 고민하는 책들이 특히나 번역되어 들어오면서 쓸데없이 호전적인 제목과 표지를 뒤집어 쓰는 경우가 많은데, 전철에서 들고 읽기가 거북할 때가 많다. 한동안은 세월호 책을 읽으면서 어떤 미친 노인네가 시비나 걸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사드 후작이야 우리나라에 잘 모르는 사람이 많겠지만, 여전히 그 명성으로 볼 때 눈 째지게 흘겨보는 이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건 뭔가 최첨단이면서 교양있는 모습으로 크레마를 들고 사드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사드 작품 중 가장 근원적인 발상을 표현하는 작품이고, 아직 표현의 세밀함이 그 악명 높은 경지에 이르기 전 작품이라 읽기에 거북한 것을 없었다. 오히려 너무 애둘러서 말하는 방식이 답답했을 정도였다. 하긴 18세기 작품과 21세기 최첨단 포르노그라피와 표현 수위를 다툰다는 게 말이 안될 것이다. 사드가 던진 화두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가능하다면 다른 작품도 (전자책으로) 접해보고, 18세기에 끝까지 달려간 그 고민의 깊이도 느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