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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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으로 유명한 김영란 전 대법관이 자신이 대법원에 몸담고 있던 시절 판결들을 되돌아보며,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판결 10개를 골라 사건의 개요, 논점, 사회적 의미, 판결의 해설을 소수의견이나 보충의견까지 포함하여 소개하는 책이다. 존엄사, 삼성그룹 승계, 포털 명예훼손, 병역거부, 성전환자, 환경과 국책사업의 충돌 등 10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사회적으로 정말 중요한 쟁점들이 대법원에서 어떻게 논의되었는지 알 수 있는 흥미로운 내용이다. 계속 읽기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능력주의는 허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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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책에 가끔 낚일 때가 있다. 진짜 그럴싸하고 흥미로운 제목,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는 책 소개, 문제제기의 적절함과 두괄식으로 요약해주는 빠른 결론도 책 구매를 서두르게 만든다. 실제로 책을 받아서 열어보면, 도입 챕터에서 전체 책 내용을 조망하는데, 전체 스토리라인과 핵심적인 주장들을 정말 이해하기 쉽게 제시하며 기대를 높인다.

그리고 그걸로 끝. 두괄식이라 변명하기에는 머리만 존재하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 이후에는 지루한 반복과 논거 쌓기가 이루어질 뿐이고, 그나마 좋은 책의 경우 탄탄한 논거나 각종 실험 결과, 선행 연구를 충실하게 열거한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제대로 낚는 책의 경우에는 뒤이은 챕터들의 지루한 논거 제시가 그야말로 반복적인 주장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이 그렇다.

전형적으로 낚시같은 미국 교양 대중서였지만, 어찌됐건 많은 사람들이 상식처럼 가지고 있는 메리토크라시에 대한 반례를 충실히 담고 있다. 그래서 지향하는 이상향이 어떤 것인지, 아니면 뭘 목표로 공격하는지는 불분명하고, 이에 따라 당연히 대안은 형식적이다.

Meritocracy건 Bureaucracy건 나름 진보적이고 진취적인 탄생 배경과 기능적 장점을 분명히 지니고 있다. 그것이 어떻게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한계를 드러내는지가 원래 이 책이 지닌 맥락일 것인데, 뭐든지 빠르게 압축되어서 진행하는 한국에서는 장점을 느낄 새도 없이 바로 파국으로 치닫는 느낌이다. 능력주의가 더 성숙해야 하는 지점도 난무하고, 능력주의를 빙자한 한계도 수두룩한 복합적인 현실이 너무 어렵다.

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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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7살의 나이로 죽기 1년 전에 출간한 사실 상의 마지막 소설.

노벨 문학상 받은 작가의 책들이라도 살면서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에 98년도 수상 이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작가다. 마르케스, 보르헤스와 같이 마술적, 혹은 환상적 리얼리즘의 서어권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 작품들마다 흡인력과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평생을 공산주의자로 살았다는 점이나, 꾸준히 기독교에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이나, 내게는 흥미로운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신약을 풍자했다는 [예수복음]도 읽어봐야겠다.

결말 부분이 달랐으면 어땠을까 싶다. 노아의 가족을 몰살하기보다, 새로운 인류가 사실 상 추방된 카인의 후손이라는 것은 어떨까? 신과 인류의 오해가 역사라면 신의 저주에 이은 두 번째 인류 창조는 카인이 만들어낸 새로운 원죄를 지니는 것도 그럴싸할 것 같다.

[이웃집에 신이 산다]라는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남성 인격신은 아예 틀려먹었다는 건 이제 상식인 듯 하다. ㅎㅎ

 

공부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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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원제는 Excellent Sheep이 큰 제목이다. 제목과 마케팅에서 살짝 오해가 있었지만, 어찌됐건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었다.

나 자신을 Excellent sheep에 대응하고 읽는 함정에 빠져 있다가 헤쳐 나온 것은 실제 아이비리그를 나온 미국의 똑똑한 양들이 얼마나 순탄하게 커리어를 만들어 갈 수 있는가에 생각이 미친 다음이다.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교하는 독자들이 분명히 많을 것이고, 책을 제대로 읽지 않은 상황에서는 마치 명문대가 만들어내는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는 책으로 오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는 공부의 배신은 스펙 중심의 우리나라 사회를 무너뜨릴 요인을 제공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나 먹히는 더 좋은 사람, 더 나은 교육이라는 지점은 이미 우리에게 너무 꿈같은 공자님 말씀 아닌가 싶다.

차라리 Excellent sheep들에게 제대로 된 path라도 제공하는 사회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과거에는 많이 했었다. 지능과 문제해결능력이라는 측면에서 기존의 교육 제도가 검증 역량이 분명 존재하는 것이고, 대량 신입 채용과 Job rotation에 기반한 커리어 패스는 개인에게도 기업에게도 생산성 총합의 저하를 가져올 수 밖에 없다. 똑똑한 사람들만으로 돌아가는 조직은 없다. 오히려 Mean값을 어떻게 올릴 것이냐, 아니면 낮은 수준의 중간값을 가진 역량 군집을 어떻게 조합할 것이냐가 훨씬 중요한 문제이다. 그런 측면에서 서구의 조직은 역량 별 차별화된 커리어패스 제시 후 성과 입증을 성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런 것과 상관 없이 더 나은 삶을 위한 교육은 중요하다. 먹고살 걱정 없어진 다음에 말이다. 역시 씁쓸하게 마무리할 수 밖에 없는 책이다.

나는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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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나는 고발한다 – 해제ㅣ드레퓌스 사건과 지식인의 양심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47  에밀 졸라 (지은이), 유기환 (옮긴이) | 책세상 | 2005년 5월

그 유명한 (그러나 제목과 날짜는 외워도 뭔 일인지는 잘 알지 못하는 수많은 역사 이벤트인)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해서 에밀 졸라가 쓰고 ‘발표’했던 글들의 모음집이다. 자세한 내용은 가끔 주옥같은 글들을 배포하는 ㅍㅍㅅㅅ[드레퓌스 사건과 100여 년 후의 한국]을 참조하면 좋다. 정리가 잘 되어 있고,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는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사건도 언급하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의 의미를 곱씹어보는 메시지도 던진다.

최근 읽어보는 사회학 고전들에서 일관되게 받는 인상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위의 언급한 글과 같이, 오늘 우리 사회의 핵심을 찌르는 말들이 1~2세기 전 서구 저작들에서 어찌 그렇게 통렬하게 적혀있는지 하는 놀라움이다. 바로 뒤이어 드는 감상은 서구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라는 되새김이다.

에밀 졸라의 글을 봐도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자기들이 열어 젖힌 근대의 이상에 대한 자부심과 근원 의식이 철철 넘친다. 에밀 졸라에게는 대혁명이 세상에 꺼내 놓은 이상적인 사회상이 큰 힘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의인화한 프랑스로 등장하고 있지만, 졸라가 열렬히 연모하고 헌신하는 대상은 결국 사회적 이상임이 분명하다. 대혁명이 왜 프랑스였는지, 대혁명 자체는 어떤 구체적인 시발점과 동력을 가지는지에 대한 분석은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대혁명은 그 이전 역사도 재구성할 정도의 힘을 지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프랑스, 서구에는 어떤 이상향의 본질적인 기준점이 있다.

드레퓌스 이후에도 서구는 수많은 격변을 겪어 왔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은 물론이고, 냉전 중심의 세계 질서 개편 속에서 68혁명, 사민주의 도입, 여전히 진행 중인 유럽의 통합 작업, 중동과의 관계와 최근의 난민 사태까지. 사건들이 가지는 파괴력과 스케일은 차치하고서라도, 하나하나의 문제들이 얼핏 보기에도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맥락을 지니는 어려운 것들이다. 우리가 지지고 볶는 (빨갱이, 장애인, 노동자, 외노자 등) vs. (애국시민 혹은 국민)의 구분 같이 선명하고 단순하게 접근할 수 없는 이슈들이다. 이런 사건들 속에서 수많은 크고 작은 졸라들이 등장했고 희생했기 때문에 서구의 현재가 지금과 같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가 빠른 시간에 서구 교양층을 모방하면서 발전하고 있지만, 개화기의 일본과 같이 근원적인 패배감을 떨칠 수 없는 상황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반면에 이런 생각도 든다. 대혁명, 드레퓌스 사건, 제노사이드, 68 등을 겪으면서 꾸준히 진보하고 있다는 것에 희망을 품지만, 졸라와 같은 희생과 참여가 끊임없이 요구될 수 밖에 없는 물리적인 조건들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대혁명 이후에도 반동으로 인한 공화국 현실화는 한참이 지연되었고, 드레퓌스 사건을 조작한 세력은 마치 고전문학의 주제처럼 현재성을 가진다. 파시즘의 악행을 확인했을 뿐, 인종차별과 파시즘은 언제든지 입을 벌리고 있고, 소비자로 전락한 현대 시민은 68과 같은 에너지를 회복할 가망이 없어 보인다. 시지프 신화처럼 계속해서 굴려올리지 않으면 패배하고 마는 것이 거시적인 역사에서도 진실처럼 보인다.

카뮈는 문학으로 시지프의 승리의 순간을 은유해 냈지만, 우리는 어떤 식으로 승리를 모사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대혁명과 같은 기준점과 진보의 방향성에 기초한 역사 이해, 현재의 연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우리 식으로 써내는 것이 필요하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나라 극우는 그렇게 역사에 집착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기준점(남한 정부 수립)과 방향(반공, 신자유주의)을 바탕으로 현실 인식(정치혐오, 배제에 기반한 동질화)을 구축하고, 미래(착취구조의 유지)를 현실화하려는 정교한 기획.

 

극우의 기획: 착취구조 유지를 위한 인종차별 활용 기반 다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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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출처: 한겨레)

김무성씨가 저출산 고령화에 대처하기 위해, 이민의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일갈했다. 독일과 같이 이민을 허용했다가 터키인들 4백만명이 몰아쳐 당한 피해의 길을 따라가지 않으려면, 문화 충격이 작은 중국 동포를 받아들여야 한단다. 새누리당 저출산 특위 회의에서 한 말씀이란다. 계속 읽기 “극우의 기획: 착취구조 유지를 위한 인종차별 활용 기반 다지기.”

읽은 책 업데이트

  • [국내도서] 세대 문제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85  카를 만하임 (지은이), 이남석 (옮긴이) | 책세상 | 2013년 6월
    • 솔직히 읽기 어려움. 초반 도입이나 문제제기까지는 쉽게 읽히나, 그 이후에 논지 전개가 이상하게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음
    • 관련된 배경지식이나 고민이 부재 + 제목이나 최근 한국사회에서 논의되던 주제들에 경도되어 다른 관점의 접근이 어색
    • 인류학이나 사회학은 그 학문의 역사 자체가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그걸 잘 모르는 상황에서는 부분부분 함정이 너무 많음. 현 시점에 맞는 주석이 필요함.

 

정부 – MS 밀약 음모

한국 정부는 마이크로소프트와 모종의 빅딜이 존재해야 한다. 아마 그 딜이 최근에 시효 만료되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최신 버전에 한국 정부가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도 현재 상황을 아무런 문제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면, 뭔가 훨씬 더 큰 우리 모두의 문제가 있는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한시간 째 자동차세 연납할인을 받기 위해 맥에서 각종 버추얼 머신으로 시도하다가 실패한 뒤에 드는 자괴감… 윈도우10과 엣지는 한국 정부 눈에는 그냥 맥이나 다름 없는거다. ㅎㅎ

인터넷으로 뭘 사지 않는터라 그냥저냥 문제없이 살다가, 최근에 몇 가지 생활용품을 구매할 일이 있어서 매번 박터지던 쇼핑 문제를 지마켓 + 씨티카드앱으로 정말 가까스로 해결. 뭔가 부수기 직전까지 화를 내고서야 자포자기로 앱을 깔았다. 이것도 진짜… 할 말이 없다.

영어도 잘 못해서 제대로 읽지도 못하는 영어책을 아마존 몇 번 돌아댕기다보니 수북히 구매하게 되고, 앱스토어에서 별 것도 아닌 게임들 몇 개 후다닥 사버리는 경험과 어찌나 대비되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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