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도어 쿠페만 탔다. 결혼할 일 없을거라는 생각도 들고 해서 평생 쿠페만 타리라 생각했다. 대배기량 쿠페 이후에 뭘 타야되나 고민 중이었다.
그런데 결혼을 했다.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아기도 금새 생겼다. 가을에 나온다. 급변하는 상황에서 내 파란 쿠페는 애물단지가 된다. 임신한 아내는 덜컹거리는 내 파랭이를 벌써부터 타지 않으려 한다. 차라리 걷더라도 기차 타고 여행가자고 한다.
결국 정말 사고 싶지 않았던 세단이며 SUV며 차들을 둘러본다. 양가 가족들은 나이도 있고 한데 차는 좋은 거 타야되지 않겠냐며 외제차를 권한다. 아마 내 항렬의 친척들이 거의 전부 BMW, Benz, AUDI 중에 하나를 타고 다니는 영향도 있을 것이다. 참고로 동생은 S Class. 나는 럭셔리급 외제차 살 경제력도 안되고 그닥 관심도 없다. 포르쉐라면 모를까. 문 네 개 짜리 혹은 껑충한 짐차에 1억 가까이 쓸 돈은 먹고 죽으려고 해도 없다.
그러다가 우연히 카니발 하이리무진을 본다. 응접실같이 개조하고 자동문으로 여닫는 차가 호기심이 든다. 머리속에 둥둥 떠다니기에 이른다. 막상 매장을 가보니 기본 카니발의 거주성이 생각만큼 좋지 않다. 차라리 옆에 있어서 잠시 뒷자리에 타 본 신형 K7이 훨씬 싸고 훨씬 광활하다. 대실망.
처음에 반한 카니발 하이리무진
아이가 더 생기면 무조건 시에나
기왕 쿠페에서 가족용으로 넘어갈 거 완전히 다른 놈으로 가자는 생각이 든다. 대형 SUV들로 시선을 돌린다. 다행히도 아우디 Q7이나 투아렉같은 놈들만 있는게 아니었다. Honda Pilot, Nissan Pathfinder, Nissan Murano, Ford Explorer, 한국에는 안들어왔지만 Toyota Highlander까지. 가격대도 5천만원 전후로 해서 카니발 하이리무진과 다름없는 수준이다. 게다가 전부 내가 선호하는 가솔린 차들이다. 국산차는 다 너무 흔한데다가, 가격도 내가 보고자 하는 차들에서 비슷비슷해서 일단 제외.
거의 다 돌아봤다. 외제차 매장은 처음 가봤는데 이 친구들은 시승에 박하지 않다. 모든 차를 다 타 볼수 있었다. 구매 의사결정에 큰 도움이 된다. 또 한 주요 요인은 영업사원이다. 영업사원이 얼마나 친절하고 내 의사를 파악하고 응대하는지, 정확한 지식과 함께 신뢰감있는 의견을 제시하는지, 심지어 영업사원의 외모, 체취, 입냄새부터 옷 입은 모양, 제스쳐와 말투까지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포드 세일즈는 소싯적 좀 놀았을 것 같은 노총각이 차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이거라도 하려고 나선 듯한 느낌. 안그래도 미국차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데, 다들 추천하는 익스플로러는 이렇게 바이바이. 내심 타보고 이리저리 둘러보고 싶던 푸조에 갔을 때는 영업사원의 불친절로 카타로그 하나 받지 않고 바로 나와서 아웃. 혼다와 토요타는 많이 공부한 것 같은 젊은 남자들이 친절한 설명, 시승까지 도와주면서 개인적인 의견까지 건내주니 훨씬 호감이 갔다. 수천만원짜리 의사결정을 하면서 차에 대해 깊이 고민도 못하고, 제대로 타보지도 못하고 그냥 영업사원에 휘둘려서 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plorer
CR-V Turbo
RAV4 Hybrid
차 보고 온지 며칠, 이런저런 고민 끝에 후보는 두 개로 압축:
대배기량 쿠페를 살 때처럼 내가 사고 싶은, 확실한 identity가 있는 차 vs. 최소한의 실용적 요구사항을 갖춘 최저가 접근
= 5천만원 중반의 혼다 파일럿 vs. 3천만원대 중반의 도요타 라브4 2WD 가솔린
크기도 다르고 가격대도 크게 차이나지만, 중간 가격이나 중간 크기의 나머지 옵션들은 정체성이 별로 명확하지 않아서 제외했다. 가족용으로 가려면 빵!!! 하고 크고 광활한 SUV로 가던가. (혼다 파일럿) 아니면 쿠페로 커버하지 못하는 최소한의 요구사항과 다음 차 고르는데 선호하는 몇 가지 제약 요인(외제일 경우 합리적 가격에 유지비도 적게 드는)을 만족하는 가장 싼 옵션을 선택해야 한다. (토요타 라브) 물론 라브는 막상 사려고하니 가격은 더 싸고 성능좋고 널찍한 국산 SUV부터 중형세단까지 다시 치고들어오는 난점이 발생.
이후 며칠동안 고민하면서 머리속에 둥둥 떠오른 놈은…. 하얀색 혼다 파일럿. 바로 계약해버렸다. 두달 기다린다. 아내와 만나면서 몰아치는 또다른 삶의 변화들이 두근두근하다!
멋진 파일럿!
본연의 목적1
본연의 목적2
광활한 실내!
탈 수 있는 3열
내려다보는 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