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 업데이트: 내 이름은 빨강, 우리의 소원은 전쟁, 천일의 눈맞춤

내 이름은 빨강

오르한 파묵의 장편 소설. 최소 두 번은 읽어야 한다. 복잡한 플롯은 아니지만 매우 정교하게 설계한 인물, 대사와 세계관을 배치하고 있어서 촉을 세우고 봐야 한다. 노벨상 받는 소설이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우리의 소원은 전쟁

여러 모로 관심이 가고 나오는 책마다 살펴보고 있는 장강명 작가. 소설 쓰기에 자신감이 붙으면서 기교가 앞서며 소설을 가리는 듯 하다. 이번 건 별로.

 

천일의 눈맞춤

의사는 자기 분야에서 약간은 신과 맞닿는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기나긴 전문교육을 지나 자신의 작은 방에서 환자라는 작은 창을 통해서만 세상과 소통한다. 사회적 경제적 지위도 좋다. 이러다보니 특히 전문교육 이전에 인격 형성이 잘 안되는 우리나라 의사들의 견해는 종종 전지적이고 일방적이다. 이런 의견이 지루한 진료실을 뚫고 나올 때 이런 책들이 나온다.

물론 당연히 좋은 내용이 대부분이다. 강한 주장도 의외로 적은 편이고, 글솜씨도 빼어나다.  장점이 더 많은 책이다.

 

먹고 마시고 놀고

나름 인생에서 큰 변화를 겪고 있는 와중에, 일상은 더더욱 즐겁고 소중하다.

예쁘다! 구리한강시민공원

유채꽃은 한 풀 꺾였지만 햇살과 맑은 하늘과 강렬한 꽃들이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맛있다! 외식과 고기 집밥 -_-;;;

나가서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 한다. 의사센세한테 눈물 쏙빠지게 혼나지 않으려면 고기를 먹어야 한다!

 

소소한 즐거움

아내와 걷기. 큰 차 기다리기. 사진 가지고 놀기 등등

가족용 자동차

투도어 쿠페만 탔다. 결혼할 일 없을거라는 생각도 들고 해서 평생 쿠페만 타리라 생각했다. 대배기량 쿠페 이후에 뭘 타야되나 고민 중이었다.

그런데 결혼을 했다.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아기도 금새 생겼다. 가을에 나온다. 급변하는 상황에서 내 파란 쿠페는 애물단지가 된다. 임신한 아내는 덜컹거리는 내 파랭이를 벌써부터 타지 않으려 한다. 차라리 걷더라도 기차 타고 여행가자고 한다.

결국 정말 사고 싶지 않았던 세단이며 SUV며 차들을 둘러본다. 양가 가족들은 나이도 있고 한데 차는 좋은 거 타야되지 않겠냐며 외제차를 권한다. 아마 내 항렬의 친척들이 거의 전부 BMW, Benz, AUDI 중에 하나를 타고 다니는 영향도 있을 것이다. 참고로 동생은 S Class. 나는 럭셔리급 외제차 살 경제력도 안되고 그닥 관심도 없다. 포르쉐라면 모를까. 문 네 개 짜리 혹은 껑충한 짐차에 1억 가까이 쓸 돈은 먹고 죽으려고 해도 없다.

그러다가 우연히 카니발 하이리무진을 본다. 응접실같이 개조하고 자동문으로 여닫는 차가 호기심이 든다. 머리속에 둥둥 떠다니기에 이른다. 막상 매장을 가보니 기본 카니발의 거주성이 생각만큼 좋지 않다. 차라리 옆에 있어서 잠시 뒷자리에 타 본 신형 K7이 훨씬 싸고 훨씬 광활하다. 대실망.

기왕 쿠페에서 가족용으로 넘어갈 거 완전히 다른 놈으로 가자는 생각이 든다. 대형 SUV들로 시선을 돌린다. 다행히도 아우디 Q7이나 투아렉같은 놈들만 있는게 아니었다. Honda Pilot, Nissan Pathfinder, Nissan Murano, Ford Explorer, 한국에는 안들어왔지만 Toyota Highlander까지. 가격대도 5천만원 전후로 해서 카니발 하이리무진과 다름없는 수준이다. 게다가 전부 내가 선호하는 가솔린 차들이다. 국산차는 다 너무 흔한데다가, 가격도 내가 보고자 하는 차들에서 비슷비슷해서 일단 제외.

거의 다 돌아봤다. 외제차 매장은 처음 가봤는데 이 친구들은 시승에 박하지 않다. 모든 차를 다 타 볼수 있었다. 구매 의사결정에 큰 도움이 된다. 또 한 주요 요인은 영업사원이다. 영업사원이 얼마나 친절하고 내 의사를 파악하고 응대하는지, 정확한 지식과 함께 신뢰감있는 의견을 제시하는지, 심지어 영업사원의 외모, 체취, 입냄새부터 옷 입은 모양, 제스쳐와 말투까지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포드 세일즈는 소싯적 좀 놀았을 것 같은 노총각이 차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이거라도 하려고 나선 듯한 느낌. 안그래도 미국차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데, 다들 추천하는 익스플로러는 이렇게 바이바이. 내심 타보고 이리저리 둘러보고 싶던 푸조에 갔을 때는 영업사원의 불친절로 카타로그 하나 받지 않고 바로 나와서 아웃. 혼다와 토요타는 많이 공부한 것 같은 젊은 남자들이 친절한 설명, 시승까지 도와주면서 개인적인 의견까지 건내주니 훨씬 호감이 갔다. 수천만원짜리 의사결정을 하면서 차에 대해 깊이 고민도 못하고, 제대로 타보지도 못하고 그냥 영업사원에 휘둘려서 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차 보고 온지 며칠, 이런저런 고민 끝에 후보는 두 개로 압축:
대배기량 쿠페를 살 때처럼 내가 사고 싶은, 확실한 identity가 있는 차 vs. 최소한의 실용적 요구사항을 갖춘 최저가 접근
= 5천만원 중반의 혼다 파일럿 vs. 3천만원대 중반의 도요타 라브4 2WD 가솔린

크기도 다르고 가격대도 크게 차이나지만, 중간 가격이나 중간 크기의 나머지 옵션들은 정체성이 별로 명확하지 않아서 제외했다. 가족용으로 가려면 빵!!! 하고 크고 광활한 SUV로 가던가. (혼다 파일럿) 아니면 쿠페로 커버하지 못하는 최소한의 요구사항과 다음 차 고르는데 선호하는 몇 가지 제약 요인(외제일 경우 합리적 가격에 유지비도 적게 드는)을 만족하는 가장 싼 옵션을 선택해야 한다. (토요타 라브) 물론 라브는 막상 사려고하니 가격은 더 싸고 성능좋고 널찍한 국산 SUV부터 중형세단까지 다시 치고들어오는 난점이 발생. 

이후 며칠동안 고민하면서 머리속에 둥둥 떠오른 놈은…. 하얀색 혼다 파일럿. 바로 계약해버렸다. 두달 기다린다. 아내와 만나면서 몰아치는 또다른 삶의 변화들이 두근두근하다!

 

원강, J.stove

원강

맨날 다니던 곳 말고 새로운 곳을 가보고 싶다는 육식부인에 부응하고자 가본 고깃집. 논현동 골목길에 있는 <원강>이라는 곳이다.  첫날은 갈빗살, 둘째날은 생등심을 시도. 말이 필요 없다. 허름한 가게에서 웬 1인분에 5만원이 훌쩍 넘는 고기를 파나 싶은데, 먹어보면 알 수 있다. 정말 좋은 고기를 잘 숙성시켜서 부위에 맞게 잘라내고 직원이 최적으로 구워준다. 갈빗살은 기름진 고소함이 함부로 씹어넘기지 못하게 하고, 두껍게 잘라낸 생등심은 기름기 없이 담백한 고기 씹는 즐거움을 보여준다. 게다가 반찬으로 나오는 파김치, 부추김치, 무채 김치, 고사리, 김과 간장, 묵은지 볶음 등은 남도 맛이 알싸하게 배어나오는 끝내주는 밥도둑들이다. 심지어 밥도 맛있다. 물론 찌게와 국물도 맛있다. 공짜로 주는 선짓국의 선지조차 돈내고 먹는 다른곳들보다 훨씬 맛있다.

무밥, 콩나물밥과 같은 특이한 메뉴, 아직 시도 안해본 다양한 고기부위, 게다가 자신있게 적어 놓은 나주곰탕까지 다른 메뉴를 먹어보고 싶게 만드는 좋은 식당을 만났다.

물론… 비싸서 힘들다. 돈 쪼들리면서 느끼는 건데…. 소고기 진짜 비싸다. ㅠㅠ

 

J.stove

구의동의 재발견. 지난주에 사전투표하려 동사무소를 걸어갔다가 오는 길에 마주친 식당. 큰길가도 아니고 골목 안쪽 코너에 눈에 잘 띄지도 않게 자리잡고 있다. 아내가 여기 나름 유명한 집이라고, 같이 한 번 오자고 했다. 토요일 점심에 설렁설렁 걸어서 가봤다. 완전 깜짝 놀랐다. 햄버거야 뭐 요즘 더 맛있는 홈메이드버거집들이 많기는 하지만 이 곳의 버거도 정직하고 괜찮다. 엔쵸비를 비벼넣은 올리브오일 파스타를 시켰는데, 이건 진짜 가격대비 이 정도 파스타를 먹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재료를 쓰는 양, 면 삶은 상태 모든게 정말 만족스럽다. 이탤리 원산지 식으로 한다고 짠맛을 강조하지도 않고, 한국 입맛에 맞추다고 마늘을 통으로 갈아넣지도 않은 담백한 파스다다. 버거도 그렇지만 집에서 솜씨 진짜 좋은 사람이 손님 초대해서 만들어주는 그런 느낌이다. 여기도 다른 메뉴들이 궁금하다. 더 가보고 싶은 식당이 두 군데나 생겼으니, 나름 생산적인 주말이다.

변화

장미 대선이 미치는 영향.

상황이 딱딱 맞지는 않고 인상깊게 봤던 사진들을 다시 찾지는 못했지만 리더십이 질적으로 바뀌었다는 건 잘 보여줄 것 같다. 성공의 기준도 애매하고, 어느 언론에서 칭했듯이 아시아에서 가장 터프한 직업을 가지게 되어서 쉽지 않겠지만. 시민들의 에너지를 쓸 수 있는 시작과 청렴한 원칙주의자가 운을 좀 타면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기자의 통찰

기자는 담당하는 영역이나 주제에 대해, 혹은 기사와 관련된 분야에 일반인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정보를 접한다. 너무 몰입할 경우 취재 대상의 논리에 사로잡히겠지만 잘 훈련받은 기자라면 객관적인 시각으로 남다른 통찰과 마주할 수 있다. 이런 통찰이 뉴스 소비자들에게 쉽게 전달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공유한 기존 상식과 관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양한 논리적 감정적 당위와 설득력있는 사실과 근거, 그리고 흥미로운 이야기 전달까지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한 주제를 깊게 들어가는 탐사기사들이 웹과 지면, TV나 2차 뉴스 생산으로 얼마나 공들여 기사를 전달하는지 보면 이 어려움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경향신문의 기자칼럼에서 흥미로운 글을 봤다. [기자칼럼]사법관료들의 성실한 저항이다. 촛불에서 시작된 지금 상황에서 기사 제목만 읽거나 얇은 기사들만 볼 때 사법파동은 소위 ‘적폐’나 ‘보수’들의 파국같이 느껴진다. 그런데 칼럼이 지적하듯이 잘 들여다보면 단순히 질이 나쁜 일부가 전체를 장악하면서 만들어진 문제가 아니다. 멀리 돌아서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의 사법체계, 더 나아가서는 사회 시스템 전반이 일제시대 때 만들어진 왜곡된 구조를 아직도 답습하고 있으며, 적폐는 일부의 문제가 아니라 적폐를 내세워 청산하려는 세력까지 포함한 구조임을 암시하고 있다. 양승태만의 문제도 아니고 양승태를 몰아내려는 사람들까지 포함한 문제이며, 요즘 몰아치는 가당치 않은 좌우 구분이 오히려 맑은 시야를 방해하고 있을 뿐이라는 무섭고 날카로운 통찰을 건낸다.

이런 통찰력이 사법파동의 전모를 드러내는 기획기사, 더 나아가 한국 사회 구조 전반의 왜곡된 근원을 탐구하는 시리즈로 발전하면 더할나위 없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이런 칼럼 한토막이라도 감지덕지인 처지다. 기자들이 분발해야 하고 나를 포함한 시민들도 이번 기회에 속지 않는 법을 몸에 익혀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제, 양승태 대법원장은 세련된 카드를 던지고 사라질 것이다. 관료사법을 위한 사법관료들의 성실한 저항이 시작되고 있다.

-사회부 이범준 기자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5081613001&code=940301#csidx6d43835194c6da49ccd3041888b84f6

식당 몇 군데

최근 먹으러 다녔던 식당들 중에 몇 군데 메모.

<서북면옥>

집 근처에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꽤 이름난 냉면집. 냉면 잘라달라는 사람들, 자리 배정받는거 기분 나빠하는 사람들, 영업하냐고 전화하는 사람들에게 꼬장꼬장한 사장님이 계시다- 냉면 안잘라준다고 써붙여놓으시고, 자리도 격하게 배정하신다. 전화기를 들면서 하시는 말씀은 “오늘 영업합니다!”. 다 쓰러져가는 집은 어울리는 컨셉이다. 평양냉면의 세계에 대해서 뭔 무협지 소설 쓰듯이 말들이 많다. 심심하다는 둥 그래도 먹고 나면 생각이 난다는 둥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맛있어서 먹는거지 뭐. 이 집은 면발에도 간이 좀 되어 있고 지릿한 소고기향이 훅 올라오는 국물에 적당히 맛있는 김치랑 나온다. 밍밍하고는 거리가 멀다. 비빔을 먹으면 단 맛이 너무 많이 나서 면이 아까운 수준. 편육이나 만두를 같이 시키면 둘이서 흡족하게 먹고 나올 수 있어서 아내와 나 둘 다 아주 좋아한다. 최근에 티비에서 다시 몇 번 조명을 받으셨는지 사장님이 옷에 신경을 쓰시는 것 같다. 오래오래 잘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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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라>

롯데월드인지 월드타워인지 백화점인지 이름도 헛갈리는 잠실에 애브뉴엘 식당가에 있는 인도 식당이다. 먹고 나서 찾아보니 그냥 한국 사람이 만든 가맹점인듯 싶다. 단맛이 확 올라오고 향신료는 저 밑바닥에서 살짝 동하는 수준의 한국식 카레를 낸다. 버터치킨을 시켰는데 뭔 토마토 소스에 설탕 친 게 나와서 깜놀. 탄두리 치킨도 작은 닭을 쓰고 고기를 연하게 하기 위한 이런저런 궁리를 한 모양이다. 야들야들하기는 한데 탄두리를 잘 쓴 큼지막한 치킨이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메뉴도 이런저런 고민할 것 없이 딱딱 시킬 수 있게 배려한 것인지, 별로 고민할 게 없다. 커리 종류도 매우 제한적.

휴일에 잠실에 가면 거의 식당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 없다. 어지간한 식당에는 웨이팅이 기본 30분 이상이 걸린다. 별로 기다릴만한 곳도 아닌데 기다리기가 뭐해서 항상 애브뉴엘 식당가로 발길을 돌린 적이 꽤 된다. 여기도 그러다가 오게 되었는데…IMG_5477

똭 하고 총괄세프의 얼굴이 크게 그려져 있다. (주방장 이름이 셰프 프로파일인줄 알았다.) 문자형 인간의 특성 상 글자들을 읽다보니… “인도 All iz well 호텔 10년 근무”!!!! <세 얼간이들>로 번역한 훌륭한 인도 영화에서 등장하는 바로 그 문구 아닌가. 알이즈웰. 한 때 내 비밀번호로 쓸 정도로 흥겨워한 문장이다. 델리에서 그래도 수개월 일도 한 터에 알이즈웰 호텔이 뭔지 금방 찾아봤다. hotel-all-iz-well어이가 없다. 델리 후진 뒷골목의 모텔에서 십년이나 근무한 요리사라니… 음식이 그 모양인 이유가 있었다. 한국 시장이 점점 더 녹록하지 않게 수준이 올라가고 있으니, 곧 이런 사짜들은 정리가 되리라 기대한다.

참고로 롯데가 이런 걸 참 못하는 것 같다. 애브뉴엘을 명품관으로 만들려면 거기에 위치한 음식점들도 신중하게 고르고 품질관리를 해야 한다. 맛은 있지만 그 옆의 크리스탈제이드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값을 다 받기에 구멍이 너무 많다. 맥주 잔이 작은 병 한 개도 다 안들어갈 것만 골라서 주는 건 정말 짜증난다.

 

<스코파 더 셰프>

어버이날 기념으로 나와 아내가 큰 맘 먹고 점심에 기십만원을 쏟아부은 식당. 맛도 있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요즘 제대로 유행하는건지 트러플 기름과 가루를 여기저기 치댄 것이 제법 비싼 분위기를 낸다. 어머니를 위한 자리였는데, 어머니가 너무 짜다고 하시고 잘 못드셔서 상심했다. ㅠㅠ

근데. 가격. 너무 비싸다. 스테이크나 샐러드 종류보다 파스타의 가격이 너무 높다. 사만얼마짜리 파스타라니… 파스타 뒤에 메인을 같이 먹지 않는 한국인들의 특성을 겨냥한 것이라고 해도 너무하다. 그리고 서버들의 숙련도가 별로다. 어버버버는 기본이고 설명도 잘 못한다. 가게에서 가장 어린 친구가 혼자 나와 우리 7명을 상대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최악은 조리복 입고 나와 담배피고 정문으로 들어가는 조리장과 졸개들이다. 12시 예약을 했고 거의 맞춰서 도착했다. 주차공간이 없는지라 발렛을 찾고 있는데 없다. 어머니와 아내가 먼저 올라가서 발렛을 부탁했다. 어디선가 연락을 받고 이제야 온다. 그런데 그 와중에 하얗고 하얀 천에 멋들어진 검은 띠들을 두르고 자기 이름(물론 영어로 된 짧은 아기같은)을 수놓은 조리복을 입은 사내들이 담배를 비벼끄며 정문으로 올라간다. 눈도 마주친다. 설마 했지만 들어가보니 그 사람들이 언제 봤냐는 듯이 인사를 한다. 게다가 오픈키친. 뭐라도 손으로 잡는거 아닌가 싶어서 불안한 시선을 주방으로 던진다. 옛날에 일식 부페가 한동안 유행한 적이 있다. 유명한 집 중에 하나가 일하던 사무실 2층에 있었다. 조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루루 나와서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고 올라가는 걸 본 뒤로 그런 모습이 너무 거슬린다. 나도 담배를 피우기 때문에 안다. 피우고만 와도 옷에 냄새가 배고, 손에는 담배 쩐내가 어지간히 손을 씻어도 가시지 않는다. 손님이고 나발이고 기본적으로 자기 직업에 대한 예의가 없는 사람들이 파인다이닝 흉내를 내는 것 자체가 가소롭다.

조카들이 신나게 뛰노는 바람에 교양없는 손님이 되어서 나도 챙피했다. ㅎㅎ 다행히 낮 손님은 우리밖에 없어서 한 숨 놓았다. 우좌지간 절대 비추다.

너무 후지게 대한 것 같아서 찾아보니 아무래도 점심에 가서 식사를 하기에 적당한 곳이 아니었나보다. 맥주가 중심인 펍 같은 분위기를 목표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점심에 아무도 없었나보다. 소르티노 세프의 명성만 보고 잘 알아보지도 않은 우리 탓도 크다고 결론. 그래도 조리복담배일당은 나쁘다.

 

싱글라이더, 천년여우

<공각기동대> 실패 이후에 영화관 가기가 더 신중해진다. 딱히 흥미를 끄는 영화가 없을 때는 차라리 어둠의 경로나 DVD를 구해서 보고 싶었던 걸 찾아 보기로 했다. 그래서 보게 된 영화 두 편.

<싱글라이더> 

11월말에 벌어지는 사건들인데 등장인물들이 겨울 옷을 제대로 챙겨입지 않고 있어서 시작부터 설정에 구멍이 많다고 느꼈다. 게다가 동양종금사태를 그린 장면들에서 별로 현실적이지 않은 부분이 많이 보여서 시작부터 더욱 불안했다. 일정 수준 경지에 다다른 이병헌이 끌고가는 분위기,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장면들이 그나마 눈길을 붙들어 맸다. 이후에도 설정의 구멍들이라 생각한 것들을 계속 발견한다. 도대체 짐도 싸지 않고 호주로 날아온 것이며, 손에 쓴 주소가 지워지지 않는 걸 보니 내내 씻지도 않고 저러고 다닌다는 건가… 싶은 의문들. 부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의사소통 대상이나 방식들. 음식을 시키지도 않고 내내 창가를 보고 앉아있거나, 자연스럽게 게스트하우스 침대에 누워버리는 배짱들. 워킹홀리데이를 2년이나 했는데 아는 사람, 도와줄 사람 한 명 없어서 우연히 발견한 아재에게 매달리는 여자 등등.

이병헌이 이번에는 드디어 물리적인 자살을 하겠군… 하고 중얼거렸더니, 같이 보던 아내가 무슨 소리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남자가 유서나 다름없는 글을 게시하고 거기서 죽었고, 그 삶이 아닌 다른 삶으로 도피했지만 거기서도 그의 자리는 없다는 것이니, 이번에는 정말 물리적인 자살을 하지 않을까? 아니면 소희랑 뻔하게 사랑으로 새로운 삶을 살려나? 하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퍼뜩 깨달았다. 아!

하나의 반전에 모든 것을 기대기만 한 영화는 절대 아니다. 잘 준비했고, 섬세하게 접근했고, 배우들이 제대로 받쳐준 결과물이다. 몇 가지 설정의 부자연스러움만 좀 더 부지런한 취재와 집요함으로 극복했으면 더더욱 끝내주는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천년여우, Millenium Actress>

존경하고 감탄스럽고 부럽고 안타까운 콘 사토시의 애니메이션. <퍼펙트 블루>, <파프리카>, <도쿄 갓파더즈>에 이어 아끼고 남겨두었던 작품이다.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이 사람의 작품들은 전부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르다. 네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은 모두 콘 사토시의 캐릭터들임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슬프지만 어둡지 않고 경쾌하지만 가볍지 않고 어리석지만 결국에는 어떤 깨달음을 얻고야 마는 그런 매력적인 인물들이다. 어떤 작품도 이야기를 하나의 틀 안에서 하나의 줄기로 전달하는 법이 없다. 파프리카는 현실과 각자의 꿈을 뒤섞고, 퍼펙트블루에서는 망상, 꿈, 현실과 시점을 마구 오간다. 도쿄 갓파더즈는 인물들의 사건이 뒤엉키는 와중에 기적을 슬쩍 크리스마스에 밀어넣으며 경쾌하게 현실 – 비현실을 엮어 낸다. 천년여우는 이 중에 단연 가장 멋지게 이야기들을 겹치고 경계를 뭉개다가 멋들어지게 연결짓는다. 은퇴한 여배우와의 인터뷰, 인터뷰어와 여배우가 몰입해서 만들어내는 과거의 기억,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 그녀의 삶을 이끌어 온 사건, 사건과 얽힌 주관적 기억, 또 다른 주관적 기억과 겹침이 넘실거린다. 영화의 모든 부분이 콘 사토시의 천재적 비전과 기획에 따라 심어져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찾아내고 발견하는 것이 그의 영화를 보는 하나의 방법인 것 같다. 영화에 등장하는 지진 하나만 놓고 봐도 그렇다. 인트로에서 기획사 사장이 영화를 돌려보며 지진을 겪는다. 그런데 여배우와 인터뷰하러 갔을 때, 그 지진이 여배우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언질을 듣는다. 실제 인터뷰를 시작하고 그녀는 자신의 탄생이 관동대지진 직후라고 고백하며 시작한다. 그녀가 배우를 그만두게 된 시점은 클라이막스 신을 찍다가 지진으로 인한 사고를 당했던 직후이고, 그 장면은 기획사 사장이 아침에 보다가 지진을 맞은 바로 그 장면이다. 그리고 인터뷰 날의 지진은 그녀가 태어난 지진과 같이 그녀의 마지막을 알리는 지진이다. 이런 아름다운 기획과 디테일들을 사랑한다.  삶에 대해 그가 발견한 것들을 그토록 경쾌하고 아름다운 인물과 사건과 이야기를 통해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아쉽다.

부산 여행

춘천에 이어서 연휴에는 1박으로 부산 여행을 선택.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 두 가지나 됐고 모두 별미로 즐거웠으니 이보다 더 좋기는 어렵다. 마무리로 선택한 역전의 이탈리안 코스까지 완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