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 업데이트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2016
82년에 태어난 여아 중에 가장 흔한 이름이 김지영이라고 한다. 주제와 소재, 이야기의 힘을 더하는 방식, 동시대인으로서의 공감이라는 측면에서 내게 특별한 소설이었다.
최근 한국에서 페미니즘은 떠오르는 사회적 주제다. 차별적인 태도들이 쌓여서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 여성들과 갈등을 빚고 사건사고가 많아지기 시작한다. 남성우월주의에 대한 신랄한 미러링에서 시작한 운동이 어떻게 똑같은 방식으로 일그러지는지도 목격했다. 사회적으로 떠들석한 주제는 변화를 가져오는 에너지를 만든다는 측면에서 언제나 환영한다. 그런데 이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는 에너지를 더 증폭하기 위해 필요한 ‘이야깃거리’ 혹은 ‘먹거리’가 너무나 빈약했다. 그 동안 이 분야에서 묵묵히 싸워온 사람들, 혹은 부지런히 번역해 놓은 페미니즘 책들, 혹은 학문의 분야에서 이룩한 담론들이 부족한 것이다. 사람이 죽고, 다치고, 갈등이 역치를 넘어서려고 하는 와중에도 이를 공론화하고 이야기할 사회적 자산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기껏 서유럽의 중학생 상식 정도나 되는 팜플릿 책으로 나와서 8천원 돈 받고 팔리기도 하고, 때맞춰 학계, 문학계, 예술계의 오랜 문제들이 불거지면서 전선은 항상 흐려지고 만다. 이 책은 과열되고 촛점을 잃은 바보들의 외침 속에서 잔잔하지만 마음에 확 퍼지는 목소리로 말을 건낸다. 이 모든 소란이 누구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살펴보자고. 그건 어떤 개인의 책임과 문제가 아닌 개인이면서 집단이면서 한국 사회가 아로새겨진 김지영씨를 위한 것이라고. 그녀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보자고. 그렇게 하염없이 평범하면서도 이토록 특별한 김지영씨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 시대를 조명하는 소설적 시도는 제빵업계의 초콜릿 케이크만큼이나 하나의 장르를 이룰 정도로 흔한 것이다. 물론 소품보다는 두꺼운 대작으로, 한 개인보다는 세대에 등장하는 사람들로 복잡하고 두터운 시대를 드러내려고 한다. 인물들은 각각의 개인적 인과관계를 가지고 드라마를 만들지만, 그 전체가 모이면 하나의 시대를 스스로 읊조리게 된다. 이 책도 김지영씨의 인생을 통해 우리 시대의 여성을 효과적으로 그려낸다. 그런데 그 개인이 만드는 이야기가 절대 특별하지 않다. 고민 상담해준답시고 돈을 버는 부류들 (무슨무슨 스님들, 철학자들, 에세이스트들, 방송인들)의 책상에 수북히 쌓일법한 이야기들.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평범한 이야기에 톡 쏘는 답을 주기 위해 선택된 소재들이 이어진다. 디테일들은 훌륭하다. 국민학교 시절 남자 먼저 번호를 쓴다는 사실은 나는 기억하지도 못하지만, 아내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 세부 사항이다. 결국 드라마가 없는 에피소드들을 생생하게 살려내며 이어붙이는 것은 그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세부 사항들에 있다. 세부사항이 시야를 가로막으며 전체를 추측하게 만드는 시도도 재미있지만, 이렇게 이야기와 세부사항을 엮는 것만으로 리듬을 만들어내는 것도 자못 흥미로웠다.
이 모든 이야기가 나와 동시대인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책이 명시적, 묵시적으로 말하는 많은 것들이 내 살아온 삶에 상응하는 지점들을 자극했다는 것도 나에게 특별함을 더했다. 나에게 누이는 없지만, 그런 삶을 살아온 아내가 있고, 소설 속의 어머니가 있고, 친구와 동료들이 있다. 나는 때때로 김지영씨의 아버지를 내보이기도 하고, 그녀 남편의 한 조각을 품고 있기도 하고, 그녀에서 폭언을 던지는 어떤 한국 남자와 닮아있기도 하다. 담담한 김지영씨의 자서전같은 독백들 속에서 나의 파편들을 계속 발견하는 경험은 작지만 묘한 쾌감과 함께 엄청난 부끄러움을 주었다.
이런 평범한 이야기들에 한 술 더 떠서 여성의 삶과 관련된 사회적 통계 숫자들을 독백처럼 붙여놓느다. 에피소드 한 토막을 들려주고, 이것이 김지영씨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아누 빈번하게 혹은 광범위하게 겪는 문제라는 것을 숫자로 결론짓는다. 소설이 아니라 다큐가 되어버리는, 그래서 소설적인 몰입에서 탈선할 수도 있는 시도를 태연하게 계속한다. 몰입보다 부채의식을 환기하면서 읽기를 계속하게 하는 효과는 있겠다. 개인적으로 좀 더 소설 본연의 효과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내 독서에서는 수치가 등장할 때마다 몰입에서 벗어나 책을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사회학 이론서나 철학 이론서도 읽는 사람 입장에서 소설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글읽기로 구분한다. 갑자기 통계치가 등장하는 순간 읽기의 방식이 어긋나면서 자주 기어를 바꿔 넣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충분히 담담하게, 충분히 세심하게 주제를 성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걸 꼭 작가에게 말해주고 싶다.
소설이 세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나 많다. 소설 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작품들이 할 수 있는 일중에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것이 이런 일일 것이다. 더 많은 한국 예술들이 광주에 대해서, 세월호에 대해서, 서민에 대해서, 노동자에 대해서, 그리고 여성과 모든 소수자들에 대해서 빛나는 이야기들을 해줘야 한다. 교과서는 그들이 고칠 수 있을지언정, 우리가 읽고 사랑하는 예술작품들은 언제나 더 멋지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진실의 조각조각을 나누어 전달할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