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의 쓸모

8974837439_1

지그문트 바우만, 키스 테스터, 미켈 H. 야콥슨 (지은이), 노명우 (옮긴이) | 서해문집 | 2015년 10월

몇년 전쯤에 조르조 아감벤과 지그문트 바우만의 책을 무더기로 사서 도전 해봤었다. 솔직히 아감벤의 저작들은 미셸 푸코, 주디스 버틀러를 잇는 극악의 난해함을 자랑하는 바람에 도저히 다 읽은 책이 없다. 주워다 섬기기는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따위가 훨씬 땡기기는 하지만, 버틀러처럼 의도적인 것인지도 의문스러울 정도로 부분과 전체를 왔다갔다하고, 의도적인 과장과 비틀기가 난무하며, (일반 독자의 깜냥에서) 맥락을 알 수 없는 차용이 무더기로 논리적 핵심 위치에 등장하는 바람에 냅다 포기했다. 독해 가능한 부분에서 일말의 날카로운 인상을 받기는 했으나,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역량 밖의 저작이었다. 반면에 바우만의 책들은 상대적으로, 또 개인적인 독서 경험의 기준에서 봐도 훨씬 대중적인 이해가 가능한 저작들이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현실을 철학과 사회학이 따라 오는 듯한 느낌을 최근 들어 자주 받게 되는데, 바우만의 시각이 딱 그런 경우였다. 유동하는 공포, 전 지구적 문제제기 없이 파편화되는 진보의 종말, 소비주체만 남게 되는 상황에서의 다양한 통찰은 소름끼치는 독서 경험과 함께 많은 고민을 안겨주는 이야기들이었다. 이번 책은 그마저도 더 접근하기 쉽다. 바우만과 다른 두 학자가 주고받은 대화와 서신 등을 엮어서 소품으로 꾸민 것이 [사회학의 쓸모]이다. 쓸데 없이 이런 책을 읽는 것들이 단순히 지적 허세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나의 쓸모’를 갈고 닦는데 도움이 될거라고 자위할 수 있게하는 즐거운 독서다. ㅎㅎ

책과 관련한 불만 한가지.

41YD1rFjxbL._SX331_BO1,204,203,200_.jpg
영문판 from Amazon.com

이유를 모르겠는 두꺼운 하드커버 양장이다. 게다가 양장본임에도 책갈피용 끈도 없다. 공백 남발에 노인용 폰트 크기로 250쪽 뽑아내고 하드카피 맥여서 만오천원 만들면 살림살이 좀 나아지시는지 모르겠다. 찾아보니 영어판은 하드커버건 페이퍼백이건 180페이지의 소품이다. 서가의 가오잡기용도 아니고 보통 사람들이 사회학적 상상력을 더 가질 수 있게 작가들이 펴낸 책이다. 손에 잡히고 읽기 쉽게 만들어주는 것이 원판의 목표에 맞는 형식이라 생각한다.

바우만은 사회학을 인간경험과의 대화라고 정의해 왔다. 또한 이 책은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화를 옮긴 책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미 팔릴만한 브랜드이다. 한국판도 바우만 브랜드를 십분 활용한 커버를 만들기는 했지만, 그냥 원판의 커버를 가져오는 것도 좋지 않을까? 가져오는 김에 페이퍼백이랑 작은 폰트, 꽉꽉 채운 페이지 양식도 같이 가져오면 좋겠다. 가격도 가져와도 좋다. 페이퍼백이 아마존 가격 23달러다. 돈 만원은 한끼 점심 값도 안되는 날이 허다한 요즘에, 일주일은 족히 배부를 만한 책 한권에 삼만원은 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가족, 사적소유, 국가의 기원

8970136614_2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은이), 김경미 (옮긴이) | 책세상 | 2007년 9월

역시나 ‘세계’와 ‘역사’를 다양한 영역에서 넘나들며 지식으로 꿰뚫을 수 있다고 믿었던 시대에 천재가 보여주는 기재에 감탄하게 된다. 벤담이 파놉티콘에서 건축학의 세부 사항까지 밀어부치듯이, 엥겔스는 당시 인류학의 최신 논거 속에서 자신과 마르크스의 논리를 도출해 낸다.

확실히 과학적, 혹은 이번 경우에서 도드라지는 표현을 써보면 유물론적 관점으로 역사를 구성해 보는 작업은 항상 흥미진진하다. 어지간한 천재이거나, 아니면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고는 덤벼들 수 없는 주제라는 진입장벽도 매력적이다. <총, 균, 쇠>의 자레드 다이아몬드나 요즘 뜬다는 <사피엔스>를 쓴 유발 하라리 같은 경우가 대표적일 것이다.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는 부분이 많지만, 유물론적 관점을 더 과장하여, 과학적 실증보다 철학적 방아쇠로 활용한 사례로 미셸 푸코가 생각난다. 정말 미시적이고 물리적인 사건들로 거시적 인과관계 혹은 흐름을 재구성해내는 작업은 머리 좀 쓴다는 사람에게는 참을 수 없는 유혹일 듯 하다. 어떤 면에서는 가려진 부분부분들로 전체를 추리하는 장르소설같은 흥분을 주는 주제라 생각한다.

읽으면서도, 아마 엥겔스 사후의 연구에 따르면 지금 하는 소리들 다 아닌 걸로 판명났을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들도 있었다. 인류학적 발견들이야 계속해서 발전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하지만 급하게 자본주의 이후의 가족까지 사고를 전개해나가는 부분이나, 애초에 사회와 가족을 유물론적 역사성 안의 두 축으로 정의하는 관점은 매우 인상깊다. 학계 내에서 치고받기로 유명한 페미니즘의 논의 안에서 비판받을 구석이 수두룩하겠지만, 여전히 몇몇 통찰들은 등골이 서늘할 정도다. 오히려 철학적 개념화에 갇혀버린 듯한 오늘의 페미니즘보다 실제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결혼 제도와 엮인 가족 제도 안에서 여성을 고민한 엥겔스의 지적들이 지금의 우리에게 더 시의적절해 보이기도 한다. 반면 성 역할 자체가 유물론적 동인에 의해 작동해 왔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는 순간, ‘인식’이나 ‘운동’ 정도로는 더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지평에 도달할 수 없고, 앞으로 발생할 일들에 영향을 끼칠 수 없는 것 아닐까 하는 허탈함도 든다. 우리 생산수단의 공유님이 모두 해결해 주실 거야 모드에 가까웠던 급한 마무리도 이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이미 공산주의 혁명이 실패한 마당에 왜곡된 모노가미로 뒤덮인 쇼비니즘 구조는 누가 바꿔준단 말인가!

뒤에 학술적 논의의 장들을 생략했던 버전이고, 역자 또한 마지막 장의 번역이 누락된 것을 안타까워 하고 있기에, 전체 버전을 하나 사 놓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철 안에서 펴들고 읽다가 퍼뜩 제목과 저자의 이름이 신경 쓰이는 건 나의 과민반응일 거라고 생각한다.

의인법

8972757500_1

오한기 (지은이) | 현대문학 | 2015년 11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아주 성공적이다. 젊은 작가의 치기가 많이 눈에 띄지만, 근본적으로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머지 단점들을 가리고 남는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쓸 때는 오에 겐자부로나 가브리엘 마르케스같이 성장했으면 좋겠다. 소설 바깥을 끌어들일 때는 하루키보다는 움베르토 에코 같이 공감의 깊이를 더했으면 좋겠다. 모옌처럼 타고난 이야기꾼 기질 속에 날카로운 시각을 담아 길게 조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좌지간 젊은 작가들의 소설이 더 활발해졌으면 좋겠다.

금연

20140114_img02
올해는 꼭 말보로를 국산으로!!!

담뱃값이 왕창 오른 지도 1년이 넘게 흘렀다. 내가 담배를 처음 피우기 시작한 것이 고등학교 1학년 때니까, 세기도 싫을 만큼의 시간을 담배와 함께 흘려보냈다. 20년이 넘으면 DNA 구조 자체가 변형이 된다는데, 뭔지 몰라도 이제 남은 건 담배 때문에 병 걸리는 일만 남은 듯 하다.

담배 때문에 안좋은 것들은 이미 십여년 전 부터 몸으로 느끼고 있다. 제일 큰 것은 냄새다. 해가 갈수록 남의 냄새 뿐만 아니라, 나에게서 나는 냄새도 예의 아저씨 냄새가 심해지는 걸 외면할 수가 없다. 원래 치아가 건강한 편이 아닌데다가, 하루에 한 갑 정도 담배를 십여년을 피우다 보니, 잦은 충치와 잇몸 염증은 기본이다. 이것 또한 구취를 만들어 낸다. 겨울이 되면 특히 옷장 문을 열어도 담배 냄새가 느껴질 정도니, 가장 큰 불편이다. 잦은 피로감이나 체력 저하는 사실 비교 대조할 상태가 없는 거나 다름 없으니, 원래 이런가 싶다. 가끔 바늘로 쑤시듯이 저려 오는 가슴 통증이 아마 담배 때문이겠거니 하고 있다. 심한 감기 몸살이나 목감기 중에도 담배를 피우고 싶은 충동을 느끼거나, 웬만하면 잠깐 참아도 좋을 때에 계속 담배 생각에 안절부절 못할 때 이게 내 의지나 선호만의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인 중독이라는 생각이 들어 불쾌하기 이를 데 없다.

모든 의사들 중에 정신과 의사만 흡연을 권한다고 했나. 마약, 약물, 알콜과 같이 상대적으로 몸에 더 빠른 악영향을 가져와서 긴급히 끊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중독자들은 한결같이 담배를 위안 삼는다. 담배를 피울 때 드는 안정감도 중독 증상 중의 하나이고 피우지 않을 때의 불안을 유발할 뿐이라는 말들이 있지만, 실제 담배를 피우며 얻는 위안은 꼭 니코틴의 작용에만 있지는 않다. 몇몇이 담소를 나누거나, 소위 멍때리는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왔다갔다 기분 전환도 된다. 특히 뭔가를 잠시 멈추고 쉰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으면서 시간 소모가 가장 적은 게 담배 피러 나가는 시간 아닐까 싶다. 옛날처럼 앉아서 담배를 피울 수 있던 때는 집중해야 할 때에 줄담배를 피우곤 했다는데, 나는 앉아서 뭔가 다른 일을 하면서 담배를 피우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재 때문에 신경쓰이고 연기가 내 눈에도 독하고 맵기 때문이다.

어쨌건 연말부터 병원에 갔다. 챔픽스나 처방 받아서 끊어볼 심산이었다. 병원에 가니 몸무게를 재라는 둥, 허리 둘레를 재야 한다는 둥, 시스템에 입력을 해야 하니 좀 기다리라는 둥 한참을 앉혀 놓는다. 나보다 늦게 온 사람들이 먼저 진찰실에 들락거리는 동안 그냥 진료도 없이 처방이나 써주면 되는 일에 왜 무안을 주는가 싶어 불만에 쌓여 있었다. 이름을 부르고 들어가 보니, 의사가 컴퓨터 모니터에 뜬 웬 정부스러운 시스템과 씨름하고 있다. 의사 면허를 집어 넣어도 뱉어 내는 모양이다. 담배값을 그리 올리고도, 금연 촉진에 투자하는 돈이 거의 늘지 않고 다 세금 충당하는 데 쓴다고 잠시 욕을 듣더니, 정부가 금연 지원을 위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란다. 다 끊을 때까지 먹으려면 십여만원 하던 챔픽스 값을 파격적으로 정부가 보조해서 지원자의 부담이 거의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대신 의사와 주기적인 면담을 진행하고, 6개월 프로그램을 완료해야 하고 등등 몇 가지 조건들이 달려 있었다. 그렇게라도 돈을 쓴다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런저런 잡일이 늘어나는 진료 기관이나, 처방 명목으로 수 만원씩 받아 먹던 동네 의원들의 불만이야 당연할 테다.
어찌됐건, 일주일 정도 아예 피우지 않은 상태로 금연이 진행 중이다. 본격적으로 사람들과 얽혀서 바쁜 일을 진행해야 되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진행하고 있다. 무사히 참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담뱃값 인상 시기에 즈음하여 벌어진 촌극이 다시금 생각이 난다. 요즘 들어 우리나라는 어떤 에피소드이건 간에, 하나의 이야기 토막이 전체의 여러 지점들을 생생하게 내포하여 전달하는 재미가 있다. 국민 건강을 위해 시행한다는 프로파간다, 피할 수 없는 경제 성장 둔화 혹은 위기, 노년층 확대와 취약계층 관리를 위한 금전적, 사회적 비용 상승, 불보듯 뻔한 세수 축소 경향과 대비되는 재정 확대의 필요성 등. 상황 돌파를 위한 어젠더 수립 – 배포 – 관리의 매커니즘은 극우 보수당과 그 기관지 같은 각종 매체들, 그리고 각종 민관 단체들의 협업 플레이의 예술적 경지를 보여준다. 이슈 이후 망각은 필수 요소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르킨다.’라던지,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본다.’ 하는 말들을 많이 한다. 하도 많이 듣다보니, 그게 뭐가 문제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중 배포와 복제의 시대에 작은 손바닥이 누군가의 눈 앞을 가릴 수 있다면 모든 이의 하늘을 가리는 건 일도 아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던지, 우물에 독타기로 이득을 보던 무리들이, 달을 가리키면 가리키는 사람들 보는 것은 개가 똥을 끊는 것보다 어려운 일일테다. 달이야 거기 있는데 손바닥으로 가리면 될 일이고, 눈 앞에 가리키는 손가락부터 부러뜨리겠다는 게 그네들의 습속이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안타깝게도 이제 클리세나 다름 없는 비판의 지점들은 피로감을 가져오며 비판의 힘을 잃는다. 세금 더 걷는 것 상관없다. 제대로 썼으면 좋겠고, 좀 더 정의롭게 걷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 불쌍한 사람들은 담배고 뭐고 좀 더 벗어나서 이런 놀음에 장기말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Hateful 8

HAteful4

16일 토요일 25시 55분 -_-;;; 영등포CGV Starium

타란티노 빠로서 꼭 영화관 스크린에서 보고 싶었다. 찾아보니 퀜틴 형님이 영화 몇 개 메이저에서 히트 좀 하더니 삘이 올랐는지 뭐 파나비전 70미리 필름으로 찍어버려서 그 비율을 소화하는 영화관이 있다나 없다나. 놀란 형님 따라하는 건지 뭔지… 그래서 결정한 곳이 영등포 CGV에 스타리움 관이다. 볼 놈만 보라는, 그것도 걸어주는게 손해 감수하는 거라고 주장하는 느낌이 충만한… 25시 55분 시작이란다. 투덜투덜대면서 택시 타고 한참을 갔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영화관의 스케일에 입이 딱!!!!

starium_03_re
광고는 아니지만, 진짜 볼만하다.

영화 러닝타임은 거의 세 시간 가까이 된다. 미국에서 로드쇼할 때는 중간에 쉬는 시간을 가졌다는데… 뭐 보통 영화관에서 할 때는 그냥 달리는 거다.

감상은… 타란티노 형님이 슬슬 영화 찍기를 접으실 때가 다가오는 것 같다. 근원으로 다시 돌아가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다. 결코 한 물 갔다는 뜻이 아니다. 자기 말로 10편만 찍고 만다는데, 이번 영화 타이틀 위에 타란티노의 8번째 영화라고 딱 박아 놓았다. 막판이 다가온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파나비전 같은 희한한 시도로 훼이크를 쓰면서, 영화 자체는 저수지의 개들 시절의 그 퀜틴을 옆구리에 차고 질주한다. 압도적인 시야각을 자랑하는 미디어를 가지고 고정된 작은 공간에서 연극과 같은 연출을 시도하는 것이 더욱 긴장감있게 다가온다. 저수지의 개들을 언급했다시피, 피칠갑에 피아 구분 없이 마구 죽는건 당연지사.

Hateful-8-4-e1450850332424
Kick it open!!!!!

새뮤얼 형님의 찰진 라임과 표정 연기야 뭐 두 말할 필요 없고, 매드슨 형님, 로스 형님 님은 이게 저수지의 개들 남북전쟁 시기 버전임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카드들이다. 놀라웠던 등장은 타란티노 사단의 신삥 취급을 받은 제니퍼 제이슨 리(Jennifer Jason Leigh)가 분한 데이지 도마그(Daisy Domergue)였다. 사실 상 초반부터 종반 직전까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커트 러셀에 전혀 꿀리지 않는 츤데레 커플같은 모습하며, 카메라의 특성 상 별 이유도 없이 화면 구석에 잡힐 때의 디테일까지 눈길을 땔 수가 없었다. 저 여자는 무슨 생각으로 저러고 연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단에 뉴비인 채닝 테이텀의 씬이 기름처럼 둥둥 뜨는 반면에 이 누님은 단번에 퀜틴 스타일 캐릭터와 합체해버리는 괴력을 보여줬다.

우좌지간.

나쁜 놈은 죽는다. 잘들 하자.

You only need to hang mean bastards, but mean bastards you need to hang.

– John “The Hangman” Ruth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8954637957_2-2.jpg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은이), 박은정 (옮긴이)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전철이나 카페같이 오픈된 공간에서 보면 절대 안되는 책.
순간순간 눈물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

원래 신파에 약하고 눈물도 많은 편이기는 하지만, 비교적 긴 서사로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것도 아니고, 담담히 진행된 짧은 인터뷰 노트만으로 구성된 글들에 이렇게 순간 감정이 치밀어 오를 줄은 몰랐다.

책은 몇 가지의 절묘한 선택들과 저자의 노련한 안목이 상승작용을 만들면서, 잘 고안된 기획만으로 도달하기 어려운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되었다. 전쟁을 여자를 통해 이야기하는 것은 오히려 식상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전쟁에 참여한 여자들의 기억에 집중함으로서 다른 책들과 차별화한다. 전쟁 바깥에서 참혹함을 알리는 상징으로 여성이 아니다. 바로 애국심에 불타올라 전선으로 막무가네 달려가던 그 러시아인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또한 수십년이 지난 후에 여성으로서 삶을 겪은 후 토해내는 기억이라는 점도 절묘하다. 오백 명이 넘는 사람들과의 인터뷰에서 작가의 안목과 실력이 힘을 발한다. 아울러 최대한 절제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지키는 데 성공한 것은 저자의 강력한 힘이다.
체르노빌에 대한 책도 같이 샀는데, 한동안 다른 소설들 좀 읽고 도전해야겠다. 그 책도 이런 식이면 감성이 버틸 재간이 없다.

2차 세계대전으로 전사한 일본군을 600만명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중에 한국인, 또 그 중에 여인들은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을까?
또 우리 땅에서 벌어진 한국전쟁은 여성들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우리를 위한 스베틀라나 알렉시비치가 간절하다.

일본 여행, 생각

기본적인 시민 의식의 수준 격차

근 십여년 전에 도쿄에 출장 갔던 것이 마지막 일본 방문이었던 것 같다. 그 때 느낀 점은 역시 대도시는 일본놈들도 어쩔 수 없구나… 였다. 야밤에 술먹고 다리 밑에서 토악질하기는 천하의 일본인이라고 해도 피해갈 수 없었나보다. 사람이 어떻게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살아가겠는가? 길바닥의 담배꽁초들이 눈에 띌 때마다, 그럼 그렇지 하는 안도감이 지금도 생각이 난다.

이번에 갔던 오사카나 교토는 도쿄에 비하면 훨씬 작은 도시였고, 주로 다닌 곳들은 그나마도 시내가 아닌 근교의 시골 관광지들이었다. 여행 내내 다니면서 했던 말은, 뭔가 사람이 살지 않는 일본식 생활 테마파크 같다는 독백이었다. 도대체 일상적인 생활인들이 어떻게 길바닥에 박힌 자갈에 윤이 날 정도로 깨끗하게 하고 산단 말인가! 후미진 골목길 하수구 근처에 잘 싸매진 쓰레기 봉투 몇 점을 발견하고 사진을 찍어 기념할 만큼 비현실적인 청결함으로 가득 채워진 거리였다.

대도시가 사람을 밀어부치는 힘은 이런 일본인들도 길바닥에 토하게 할 정도라고 상황에 대한 해석을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좁은 길에 쏟아져 나온 관광객들과 어깨 한 번 부딪히는 일 없었고, 들리는 목소리는 한국어 아니면 중국어 뿐이었다. 식당에서 분명히 사람이 없는 줄 알았던 뒷자리에서 튀김 씹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여자 세명이 입술모양 대화를 나누며 즐겁게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철렁했던 기억까지. 들어오는 전철에 타던 한국인 가족이, 한국에서마냥 빈 자리를 향해 밀고 들어가자, 나오던 일본인 중년 남성이 놀라는 작은 소동 아닌 소동도 있었다. 아마 절대 발생할거라 생각치 않던 일이 일어난 것이리라.

기본적인 시민의식의 질과 양이 다르다. 일본인들이 서울에 와서 이 미개한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마 내가 인도나 중국 거리에서 느끼는 당혹감과 이질감보다 덜하지 않을 것 같다.

디테일의 격차

어느 블로그에서인가, 신라호텔 팔선에서 음식을 싸가지고 왔더니 유아용 물약통에 소금을 넣어서 포장했더라면서, 이런 디테일의 실패가 얼마나 근본적인 차이를 의미하는지 성토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사치재로 갈수록 그러한 디테일이 가장 큰 소비가치를 구성한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루에 한 사람당 수십만원 하는 료칸에서는 최첨단 키박스보다는 녹슨 열쇠를 담는 주머니에 디테일을 담는다. 오이 절임을 내놓을 때도 세공한 한 조각으로 눈의 즐거움과 입 안의 탄성을 이끈다. 매번 달라지는 카이세키 코스를 정성껏 프린트하여 직인을 찍어 내온다. 이런 것이다.

사실 더 놀라웠던 건 이런 사치재에서의 디테일이 아니다. 오백엔에 개방하는 사찰 공원에 나무 하나 하나에 한글까지 적어서 명찰을 달았다. 모든 나무 식재 바닥에는 이끼를 깔고 관리한다. 물이 흐르는 주변은 대나무 통을 잘라서 물길을 만든다. 등등

편집증에 가까운 디테일에 대한 집착은 범상한 경험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만들어준다.

 

미적 감각의 수준 차이

분당 탄천을 여름 밤에 걷는 일은 기분좋고 상쾌한 일이다. 탄천 중간 어드메에 있는 오색 찬란한 작은 전구들이 눈을 찌르기 직전까지 그렇다. 오사카 시내에 연말연시를 맞아 가로수들을 둘러싼 작은 전구들은 장밋빛이다.

시골의 정겨운 풍경은 멀리서 볼 때 특히 아름답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서 집들이 눈에 들어오면, 역시 여기서 살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 시골의 가옥들은 도시의 닭장과 달리 정말 집같은 분위기를 준다.

대한민국 전국민의 꿈이 건물주란다. 조물주보다 윗급이 건물주라는 말도 있다. 집은 투기와 과시, 혹은 계급 확인의 도구이지 미적 감각의 대상이 아니다. 교토 근교 관광지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작은 건물의 외관 사진은 그들과 우리의 거리를 한 눈에 확인하게 해 준다. 대기업 정도가 기업이미지를 위한 투자로 멋들어지게 포장한 외관이 아니다. 그냥 빌라나 사무실 용도로 쓸법한 5층 정도 되는 시골 건물이다.

인구의 대다수를 노예로 부려야 발생 가능하던 소위 문화적 고양이 도대체 이 나라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일반화되었길래 저런 우체통이 가능한걸까?

 

전통적인 것, 일본적인 것

경쟁에 이기고 살아남는 상품이 점점 전통을 만들어가면서 최상의 퀄리티에 도달한다. 철도역 도시락은 지역 전통 혹은 특산품과 맞아떨어지면서 일본만의 독특함을 만들어낸다. 개화 이후 받아들인 서양의 것들은 이미 일본 안에서 세계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거기에 일본 특유의 것으로 포장하는 장인 정신과 서비스를 결합하면, 소위 고객경험은 일본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올라간다.

연초에 가게에 복을 빌어주고 삥을 뜯는 노인들의 우스꽝스러운 행렬은 다시 없이 진지하다. 원래 전통이 어땠을지 모르겠으나, 에르메스 컬러를 뽐내는 사찰의 목조 장식은 말할 수 없이 현대적이다. 서구와 달리 만들어낸 전통과 상품화임이 분명해 보이나, 이대로 한 세대만 더 지나면 소세키가 걱정한 개화의 소화불량을 거뜬히 넘어설지 모르는 일이다.

 

세계화? 몰개성화? 우리나라의 발전?

마지막으로 재미있었던 것은, 일본 사람들의 모습에서 이제 더 이상 “독특함”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십여년 전만해도, 못생겼건, 꾸미는 방식이 이색적이건, 키가 작건, 영어를 너무 못하건, 이빨이 흉하건 뭔가 일본 사람들은 보면 구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게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대만 혹은 상해나 북경 출신의 사람들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서울, 도쿄, 싱가폴, 홍콩, 콸라룸푸르, 마닐라, 방콕 모든 아시아의 도시들이 몰, 아케이드, 백화점 구조에 비슷비슷한 상표들로 도배되기 시작한지 꽤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세계화인지, 몰개성화인지, 우리나라가 발전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일본 여행에서 먹은 것들

스시: 오사카 힐튼 호텔 근처의 동네 스시야에서 점심

기가 막힌다. 스시 각 10피스씩 먹고 두어개 더 시켜 먹었고, 생맥주 두 잔까지 챙겨 먹었는데, 한국 돈으로 7만원 안쪽. 맛이 강한 생선들 중심으로 시종일관 정신 차리지 못하게 공격해대는 구성에, 밥도 충분히 쥐어서 강한 맛을 잘 다스리면서 많이 먹을 수 있다. 투박하고 거칠지만 정말 인상깊은 점심이었다.

고베규: 미소노 스테이크 오사카점에서 저녁

 

맥주 먹고 마사지 받고 클래식 음악 들으면서 쳐 잔다는 그 유명한 고베 소에서 백설기 같은 배때지를 갈라서 내온다는 고베규. -_-;;; 150그람 구워주는 저녁 코스가 제일 싼게 인당 20만원에 육박한다. 맛은? 훌륭한게 분명하지만, 기름기 더덕더덕 붙은 고급 소고기는 우리나라도 많이 올라온 듯. 게다가 진한 맛을 제어하기 위해 눈 앞에서 데판야키 요리사가 뿌려대는 소금과 후추의 양에 말 그대로 압도되었다. 앞으로 한동안 맛있는 집에 가면 눈처럼 뿌려대는 소금과 후추가 눈 앞에서 일렁일 듯 하다… 결론은. 한 번은 먹어 볼 만 하다. 훨씬 싸게 나오는 점심으로 추천.

함박스테이크, 카레: 교토 신사 주변 로컬 음식점에서 점심

영어를 잘하는 늘씬한 사장님. 뭔가 외국에 살다 왔을 것 같은 취향이 조그만 가게 곧곧에 깊이 배어 있다. 원래 일본식으로 유명한 메뉴지만, 이건 좀 더 서양식 쪽으로 움직인 듯 하다. 함박 스테이크는 포크로 자르면 육즙이 줄줄줄 흘러나와 빵 소스로 닦아 먹었다. 정말 맛있고, 비싸지도 않았다. 맥주가 맛없는 일본 식당은 없을 것 같다.

가이세키 요리: 료칸 스미야 키호안에서 저녁

식사 시간 오후 8시 ~ 밤 10시 30분.
음식 하나 하나에 정성과 주장과 맛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중간에 코스를 멈추고 안주용으로 요리 접시 두 개와 추가 사케 한 병을 주문하니, 열심히 영어로 서빙해 주던 종업원이 용기를 내어 한 마디 한다. “아직 배 안부르냐. 보통 사람들은 밥 나올 때 쯤이면 너무 배부르다고 하는데… 어째 괜찮으시겠냐.” 그렇다. 우린 보통 사람이 아니다.
만취해서 방에 가서 료텐부로 첨벙거리다가 쳐 잠든 건 함정…

료칸 조식: 료칸 스미야 키호안에서 조식

난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소문이 났나보다. 밥을 더 달라고 했더니 밥솥에서 2인분을 한 번에 퍼준다. 물론 같이 간 친구가 남긴 밥까지 다 먹었다.
공용 반찬을 덜어먹는 접시를 사용하지 않은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교양없이 반찬통에 젓가락질을 마구 해 댄 한국 관광객이 될 까 두려워… 그만 반찬통에 있는 반찬을 모두 먹었다. 보통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이해해 줄 듯 하다.

관광식당: 교토 근교 관광지 식당에서 점심

존경해 마지 않는 대 일본 제국에서 신용카드를 이렇게 안받을 줄이야… 간소하게 가져간 현금을 다 써대고, 할랄 닭고기까지 취급하는 국제 관광객을 타겟으로 하는 가게에 갈 수 밖에 없었다. 30분 넘게 이런 가게를 찾느라 고생하고, 가봐야 먹지도 못할 가게에 30분 넘게 줄 서 있었던 건 또 다른 에피소드.
관광 식당이라고 맛없는거 아니다. 싹싹 비웠고, 사진도 못찍었다.

기타: 각종 과자, JR 역에서 사 먹은 도시락 등

워낙 끼니가 모자르게 식사에 집중하느라, 길거리 음식이나 과자 등은 많이 경험하지 못했다. JR 역에서 산 고등어 초밥 도시락은 우리나라 어지간한 스시야에서 내놓는 고등어 초밥 뺨을 후려쳐대는 맛이다. 쵸코나 과자야 뭐… 두 말 하면 잔소리다.

아르헨티나 단편집

8955615906_1

훌리오 코르타사르 외 지음, 조구호 옮김, 이승수 해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바다출판사 / 2012년 4월

보르헤스가 나서서 골랐다고 하는 중남미 환상문학 단편선집. 정말 몇 페이지 안되는 단편들도 있는데다가, 단편이 환상문학이라는 장르와 결합하니 뒷통수를 때리거나 궁금증이 극대화된 멍한 상태로 이야기가 끝나버리는 좀 황당한 경험도 하게 된다.

안그래도 문학 번역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중남미 작가, 그 중에서도 단편 중심으로 이름을 알린 작가들의 번역본이 많지 않을 것이다. 마음에 드는 작가가 있어도 추가 독서로 연결하기 어렵다는 점이 아쉽다.

소설들은? 당연히 읽기 쉽고, 흥미롭고, 즐겁다. 천천히 읽어도 두시간 정도면 다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소품집으로 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