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인 시민 의식의 수준 격차
근 십여년 전에 도쿄에 출장 갔던 것이 마지막 일본 방문이었던 것 같다. 그 때 느낀 점은 역시 대도시는 일본놈들도 어쩔 수 없구나… 였다. 야밤에 술먹고 다리 밑에서 토악질하기는 천하의 일본인이라고 해도 피해갈 수 없었나보다. 사람이 어떻게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살아가겠는가? 길바닥의 담배꽁초들이 눈에 띌 때마다, 그럼 그렇지 하는 안도감이 지금도 생각이 난다.
이번에 갔던 오사카나 교토는 도쿄에 비하면 훨씬 작은 도시였고, 주로 다닌 곳들은 그나마도 시내가 아닌 근교의 시골 관광지들이었다. 여행 내내 다니면서 했던 말은, 뭔가 사람이 살지 않는 일본식 생활 테마파크 같다는 독백이었다. 도대체 일상적인 생활인들이 어떻게 길바닥에 박힌 자갈에 윤이 날 정도로 깨끗하게 하고 산단 말인가! 후미진 골목길 하수구 근처에 잘 싸매진 쓰레기 봉투 몇 점을 발견하고 사진을 찍어 기념할 만큼 비현실적인 청결함으로 가득 채워진 거리였다.
대도시가 사람을 밀어부치는 힘은 이런 일본인들도 길바닥에 토하게 할 정도라고 상황에 대한 해석을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좁은 길에 쏟아져 나온 관광객들과 어깨 한 번 부딪히는 일 없었고, 들리는 목소리는 한국어 아니면 중국어 뿐이었다. 식당에서 분명히 사람이 없는 줄 알았던 뒷자리에서 튀김 씹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여자 세명이 입술모양 대화를 나누며 즐겁게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철렁했던 기억까지. 들어오는 전철에 타던 한국인 가족이, 한국에서마냥 빈 자리를 향해 밀고 들어가자, 나오던 일본인 중년 남성이 놀라는 작은 소동 아닌 소동도 있었다. 아마 절대 발생할거라 생각치 않던 일이 일어난 것이리라.
기본적인 시민의식의 질과 양이 다르다. 일본인들이 서울에 와서 이 미개한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마 내가 인도나 중국 거리에서 느끼는 당혹감과 이질감보다 덜하지 않을 것 같다.
일본 골목 테마파크 느낌
바닥에는 꽃잎뿐…
여염집 들어가는 골목
기차역 건물조차 반짝인다.
없다. 역전의 쓰레기 따위.
여길 뚫고 가도 어깨는 무사하다.
디테일의 격차
료칸 방열쇠
꽃나무 명찰
가이세키 코스 메뉴
입안에서 확 폭발하는 오이 세공
어느 블로그에서인가, 신라호텔 팔선에서 음식을 싸가지고 왔더니 유아용 물약통에 소금을 넣어서 포장했더라면서, 이런 디테일의 실패가 얼마나 근본적인 차이를 의미하는지 성토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사치재로 갈수록 그러한 디테일이 가장 큰 소비가치를 구성한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루에 한 사람당 수십만원 하는 료칸에서는 최첨단 키박스보다는 녹슨 열쇠를 담는 주머니에 디테일을 담는다. 오이 절임을 내놓을 때도 세공한 한 조각으로 눈의 즐거움과 입 안의 탄성을 이끈다. 매번 달라지는 카이세키 코스를 정성껏 프린트하여 직인을 찍어 내온다. 이런 것이다.
사실 더 놀라웠던 건 이런 사치재에서의 디테일이 아니다. 오백엔에 개방하는 사찰 공원에 나무 하나 하나에 한글까지 적어서 명찰을 달았다. 모든 나무 식재 바닥에는 이끼를 깔고 관리한다. 물이 흐르는 주변은 대나무 통을 잘라서 물길을 만든다. 등등
편집증에 가까운 디테일에 대한 집착은 범상한 경험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만들어준다.
미적 감각의 수준 차이
절제된 톤의 거리 장식
관광지 주변의 일반 가옥
시골 빌딩의 우체통
분당 탄천을 여름 밤에 걷는 일은 기분좋고 상쾌한 일이다. 탄천 중간 어드메에 있는 오색 찬란한 작은 전구들이 눈을 찌르기 직전까지 그렇다. 오사카 시내에 연말연시를 맞아 가로수들을 둘러싼 작은 전구들은 장밋빛이다.
시골의 정겨운 풍경은 멀리서 볼 때 특히 아름답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서 집들이 눈에 들어오면, 역시 여기서 살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 시골의 가옥들은 도시의 닭장과 달리 정말 집같은 분위기를 준다.
대한민국 전국민의 꿈이 건물주란다. 조물주보다 윗급이 건물주라는 말도 있다. 집은 투기와 과시, 혹은 계급 확인의 도구이지 미적 감각의 대상이 아니다. 교토 근교 관광지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작은 건물의 외관 사진은 그들과 우리의 거리를 한 눈에 확인하게 해 준다. 대기업 정도가 기업이미지를 위한 투자로 멋들어지게 포장한 외관이 아니다. 그냥 빌라나 사무실 용도로 쓸법한 5층 정도 되는 시골 건물이다.
인구의 대다수를 노예로 부려야 발생 가능하던 소위 문화적 고양이 도대체 이 나라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일반화되었길래 저런 우체통이 가능한걸까?
전통적인 것, 일본적인 것
고등어 초밥 도시락
역사와 전통(?)의 마들렌!
로고를 손님에게 보이게 둘 것.
관광지 노인의 전통적 소일거리?
에르메스 컬러의 사찰 장식
경쟁에 이기고 살아남는 상품이 점점 전통을 만들어가면서 최상의 퀄리티에 도달한다. 철도역 도시락은 지역 전통 혹은 특산품과 맞아떨어지면서 일본만의 독특함을 만들어낸다. 개화 이후 받아들인 서양의 것들은 이미 일본 안에서 세계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거기에 일본 특유의 것으로 포장하는 장인 정신과 서비스를 결합하면, 소위 고객경험은 일본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올라간다.
연초에 가게에 복을 빌어주고 삥을 뜯는 노인들의 우스꽝스러운 행렬은 다시 없이 진지하다. 원래 전통이 어땠을지 모르겠으나, 에르메스 컬러를 뽐내는 사찰의 목조 장식은 말할 수 없이 현대적이다. 서구와 달리 만들어낸 전통과 상품화임이 분명해 보이나, 이대로 한 세대만 더 지나면 소세키가 걱정한 개화의 소화불량을 거뜬히 넘어설지 모르는 일이다.
세계화? 몰개성화? 우리나라의 발전?
마지막으로 재미있었던 것은, 일본 사람들의 모습에서 이제 더 이상 “독특함”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십여년 전만해도, 못생겼건, 꾸미는 방식이 이색적이건, 키가 작건, 영어를 너무 못하건, 이빨이 흉하건 뭔가 일본 사람들은 보면 구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게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대만 혹은 상해나 북경 출신의 사람들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서울, 도쿄, 싱가폴, 홍콩, 콸라룸푸르, 마닐라, 방콕 모든 아시아의 도시들이 몰, 아케이드, 백화점 구조에 비슷비슷한 상표들로 도배되기 시작한지 꽤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세계화인지, 몰개성화인지, 우리나라가 발전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