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동 가정식 이태리 식당, 제이스토브

완전히 팬이 되었다. 설렁 설렁 걸어서 자꾸만 가고싶은 맛집이 되었다. 사장님 혼자서 작은 부엌에 복작복작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고 미심쩍다. 기다림 끝에 나온 음식을 보면 고급 레스토랑의 플레이팅은 아니다. 하지만 한 번 먹어보면! 정말 솜씨 좋은, 어쩌면 은퇴한 셰프쯤 되는 사람이 친한 친구들을 불러다가 식사를 대접할 때나 나올법한 그런 감동이 있다. 작은 음식점 치고 메뉴가 꽤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그 메뉴판이 너무 얇아 보인다. 소문 안났으면 좋겠다. 사장님이 혼자 감당하되, 망하지 않을 정도만 사람들이 왔으면 하는 이기적인 생각이 든다.

애덤스미스 엄마, 젊은 작가들, 드러내지 않기, 그날 당신은 어디에?

읽은 책 업데이트:

한국사회가 발전하고 있다는 가장 최신의 단호하고 분명한 증거가 있다면 그건 패미니즘의 부상이다. 그 동안 억눌렸던 것이 빠른 시간에 안팎에서 쏟아지는 통에 똥도 있고 된장도 있고 부산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패미니즘의 에너지는 문화, 예술, 철학을 넘어 실제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는 정치, 생활 습속으로 진출했으며, 남성 중심의 공고한 성곽들을 집요하게 공략하고 있다. 방어하는 기득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역차별이다 싶을 정도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도 남녀의 유전적 물리적 차이는 어떻할건가!’ 따위의 함정 특히 위험하다. 유전적 특성대로만 살면 그건 동물이지 사회를 이룬 인간이 아니다.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방관자적 입장에 서서 풍성하고 흥미로운 관전이 즐겁다.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경제학을 공격하는 흥겨운 패미니즘이다. 패미니즘이라는 이름 붙이기가 유대인 딱지 붙이듯이 쓰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부담없이 많이 써줘야 하지 않을까. 오랜 사회 내 갈등을 만들어내면서 발전한 서구보다 우리나라는 이 단어를 역사 없이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우좌지간. 고상한 척 과대망상에 빠져 있는 남성적 공간인 경제학에 색다른 무기를 들고 뛰어들었다. 군내나는 개천을 흙탕으로 뒤흔든다. 쉽게 읽히고 깊게 공감할 수 있으며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좋은 책이다. 요즘엔 맑스니 뭐니 하는 것보다 이런 측면에서 접근해야 기득권의 성벽에 금을 낼 수 있다. 이게 바로 패미니즘의 놀라운 점이다. 강력 추천.

 

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젋은 작가의 정의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살펴보지 않았으나, 1년간 발표된 ‘젊은 작가들’의 중단편을 심사하여 선정한 수상 작품집이다. 2010년도 초반 즈음에 발견한 뒤로 이상문학상과 함께 매년 챙겨보는 문학상이다.

놀랍게도 이번에는 대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 명을 제외한 전원이 여성 작가들이다. 여성이 아닌 한 명이 대상이라는 모양새가 아주 의미심장하다. 올해는 별달리 인상깊은 소설이 없었다는 일부 심사위원의 평까지 곁들이면 더더욱 의미심장하다. 작가의 성별과 관계없이 나는 대상을 제외하고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여성의 관점을 드러낸 작품들이 오히려 신선하고 즐거웠다. 대상을 받은 소설은 이 찬란한 여성들 사이에서 뭔가 꼰대같은 냄새를 풍기고 있다. 이 지점도 역시 놀랍고 감탄해 마지 않는다. 여성의 관점으로 과거와 다른 소설을 써낸 것이 문학적 풍요와 새로운 차원의 감동을 자아난다. 그러면서 과거를 즈려 밟는다. 현실을 낯설게 보기, 결국 파격적인 관점과 시도가 예술의 근원이란 것을 인정한다면, 이 책에서 페미니즘이 던지는 예술구와 그것을 받아서 작품집에 담는 한국 문단의 모양이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어느 해의 문학상 수상 작품집보다 강력 추천.

 

드러내지 않기 – 혹은 사라짐의 기술

프랑스 철학자의 대중적인 책. 제목과 마케팅 문구를 보고 디지털 자아가 가진 특성을 유희하는 책일거라 생각해서 구매했다. 너무 어렵지 않고 가볍고 흥미롭게 볼 만 하지만. 처음에 생각했던 방향은 아니다. 저자도 고백하고 있지만 자신이 발견한 ‘드러내지 않기’의 철학을 전형적인 서구 역사 속에서 더듬거린 것이 아쉽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런거 봐야되지 않나?

 

그날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 다큐멘터리 사진가 10인이 기록한 탄핵 그리고 기억의 광장 2017-2013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 한 명의 이름을 책에서 발견하고 구매했다. 엉뚱하게도 사진작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멋지다고 생각했다. 뭔가 뉴욕에서 엣지 있는 사진가의 이미지가 더 어울리는 친구가 끼어 있어서 생소했다. 한국 사회의 이면을 꾸준히 추적한 사람들도 있고, 동창님처럼 젊은 시각으로 촛불을 관찰한 사진들도 있다. 사진집보다 디지털 환경에 더 적합한 전시물로 꾸몄은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나름 꼰대 나이인지라 책이라는 미디어는 그림보다 문자가 이어져야 읽는 맛이 난다. 우좌지간 소장용으로 훌륭하다.

다가올 내각제 개헌 정국에 알박기를 하자.

청문회 비토, 추경 비토를 통해 정권이 의석수도 얼마 안되면서 독단적으로 밀어부친다고 비난하고.

모든 일에 사사건건 반대하여 협치를 봉쇄하면서 정부를 들이받을 것이고.

제왕적, 독단적 대통령제때문에 될 것도 안된다를 아직 손아귀에 있는 언론 동원해 나팔 불 것이다. 안봐도 뻔하다.

지방선거 기운이 돌기 시작하면 개헌 군불을 솔솔 지피기 시작해서.

정부 심판과 내각제, 이원집정부제같이 뭔지도 모르겠는 제도를 주장하면서 개헌 정국으로 끌고 갈 것이다. 탄핵 와중에마저 개헌 정국을 유도했던 버러지들 아닌가.

집권 민주당 내 일부를 포함해서 모든 야당이 여기에 참여할 것이고. 심지어 식자연 하는 학자들, 원로 운운하는 노친네들이 모두 나서서 이를 지지할 것이다.

이런 사태에 판단의 도움이 되고자 하는 혜안 하나를 소개한다.

AAg593e8f709b43b.jpg

6월 혁명이 쟁취한 직접민주주의를 함부로 거두지 말아야 한다. 국회의원의 대의 제도가 먼저 건전하게 작동해야 내각제가 말이 된다. 차라리 문통의 이미지를 업고 4년 중임제나 하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냥 518 정신, 평등 정신, 환경 보호 같은 올바른 개념들을 헌법에 박아넣는 것만으로도 개헌의 의의는 충분할 것이다.

벌써부터 아는 척 해대며 여론을 호도할 내각제 소용돌이가 진저리쳐진다.

영광, 광주 여행

아내가 장모님과 대전에서 일하는 처남을 만나러 다녀왔다. KTX에 있던 잡지에서 영광 소개를 보고 와서는 식당까지 정해져 있다며 가자고 한다. 임신 막판 3개월을 눈앞에 둔 지금 어디든 다니고 싶다는 말이 그냥 넘어가지지 않는다. 조금 있으면 배가 무거워서 더 움직이기 어려울 것이고, 아기가 나오면 그야말로 우리 둘이 훌쩍 어딘가 갈 수 있는 날이 며칠이나 되겠는가. 그나마 최초 6개월에서 1년은 외식조차 언감생심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말 나온 그 주말에 바로 떴다.

자주 가던 동네가 아니라서 그런지, 풍경이며 바람이며 모두 이국적이고 멋졌다. 백수해안도로가 주는 인상은 정말 강렬했다. 멋진 관광지에 날씨도 좋은 때인데 사람이 한산해서 몇배는 더 즐길 수 있었다.

아무래도 임신으로 몸이 불편한 아내가 있으니, 1박은 광주로 넘어와서 라마다 플라자 호텔에서 묵었다. 십여년 전에 왔던 광주의 우울한 인상과 달리 많이 개발되고 발전한 것 같다.

당연히 여행은 먹으러 가는 것. 너무 피곤해서 아침으로 계획했던 백합죽을 못먹은 것이 한이 된다. 새 차가 나오면 좀 더 편안하게 운전해서 전남 여행 다시 오기로 결정했다.

어쩌면 마지막이었을 파랭이와 장거리 여행. 보내는 것이 있어야 오는 것도 있으니, 문 두짝 차와의 인연은 잠시 숨겨두어야 한다. 맘이 쓰리다.

프로젝트

내가 십수년 동안 해 왔던 일의 가장 큰 특징은 ‘프로젝트’ 성격이라는 것이다. 대기업에서 또는 산업 내 영역을 나눠가진 회사들이 조직을 나누고 개인의 역할을 정리해 놓은 촘촘한 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다. 계속되는 일상 업무와 달리 뭔가 변화가 필요하거나 기존 업무의 궤를 벗어난 상황에 대응하는 일이다. 이 회사 저 회사에서 발생하는 일을 따라 장돌뱅이처럼 떠돈다. 특정 주제로 여러 산업을 훑기도 하고, 특정 산업 안에서 이런저런 주제들을 담기도 한다. 본인과 성향만 맞는다면 이만한 일도 없다. 개인의 역량에 의존적인 작은 별동대 조직, 지루함없이 매번 긴장과 성취를 넘나드는 일하는 방식, 젊은 시절부터 전문가인양 으시댈 수 있는 부가 효과까지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돈도 많이 받았지만 이제 그런 시절은 갔다는 점이 좀 아쉽다.

제한된 자원과 시간을 가지고 조직에 확실한 임팩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프로젝트는 명확한 목적, 유연한 접근 방법, 집요하게 파고드는 힘, 설득을 위한 전략과 노력이 모두 중요하다. 고객도 컨설턴트도 구체적인 목표를 명확하게 공유해야 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최고의 전문성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 관성에 올라탄 조직이 깨어날 수 있는 충격을 주거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새로운 회사를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일을 키워가기 전에 먼저 월급도 벌고 시장 상황도 볼 겸 컨설팅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과거 고객사에 있던 분이 인연이 되어서 진행되던 프로젝트 초기에 급하게 끼어들었다. 아직 계약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여기저기서 모인 다국적군 연합 같은 팀과 목표도, 방법론도 명확하지 않은 고객사 팀은 고객사 내부 공감대 형성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2주일째 허우적대기만 하고 있다.

늦게 들어왔지만 이틀 동안 받은 자료도 없고, 제대로 된 논의 시작도 없고 답답하기 끝이 없다. 금융사인 탓에 외부 인터넷도 모두 막혀있는지라, 급하게 스마트폰 요금제를 바꾸고 테터링으로 이렇게 딴 짓을 하고 있다.

내가 책임지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특히 초반에는 운신의 폭이 좁다. IT가 주가 되는 상황이라 프로젝트 전체에 대한 통찰이나 경험도 부족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들 오십대 중반에 다다른 중년들이 자그마한 노트북 들고 들어와 직접 일하는 통에 후학은 나서기 어려울 뿐이다.

결론은. 짜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