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안 맛집, 파워블로거지

둘이서 삼십만원이 나와도 정말 만족스럽기도 하고, 둘이서 삼만원 남짓 먹어도 욕지기가 나기도 한다.

 

 

 

금요일 저녁에 친구의 부장(ㅠㅠ) 승진 턱을 얻어먹으러 5월의 오젠을 방문했다. 바에서 이미 식사를 시작한 사람들이 있길래 오늘은 방에서 오붓하게 식사를 했다. 결국 술을 조금만 먹어보려 했지만 실패. 맥주, 도쿠리 데워서 한 개, 사케 대자 한 병을 해치우고 말았다. 물론 음식과 술 모두 대만족. 앞으로 이런 호사를 누릴 날이 몇 개월 안남았다는 게 가장 슬프다.

여기까지가 삼십만원을 내도 흐뭇하게 웃을 수 있는 집 이야기고…

다른 곳은 이렇게 훌륭한 평이 소셜을 도배하고 있는 곳이다. 링크 참조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도저히 먹을만한 것이 아닌 삼겹살을 오븐 초벌구이랍시고 냈다. 너무너무 배가 고파서 우걱우걱 먹다가 도저히 먹을 수 없어서 고기를 남겼다. 고기를… 게다가 식당밥 삼십년에 공기밥을 못먹은 것은 처음이다. 차갑게 식은 반 죽이나 다름없는 걸 밥이라도 내놓더라. 정말 솔직하게 관리자 분을 모시고, 이게 이 집이 원래 목적하는 품질의 음식이 맞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냥 돈 내고 나왔다. 아무 소리도 안하고. 그냥 안가면 되는 일이다. 쿨하게 그러고 말려고 했건만. 기어이 홈페이지 찾아서 불만 보내고, 일기장에 찌질하게 끄적이고 만다.

비싸서 만족스러울 수도 있다. 당연히 어느 수준의 비용을 넘어가게 되면 강력한 자기합리화와 사치재가 주는 쾌감이 현실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그건 그닥 창피할 부분이 아니다. 최소한의 객관적인 품질 차이만 어느 정도 확보하면 그 다음은 사치재가 마련한 정신승리의 영역이다. 뭐든 안그렇겠는가. 다만 내건 가격을 정당화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삼만원 점심의 영역에서 기본 품질은 사실 더욱더 중요하다. 동네에서 제일 큰 놀이방이 있건, 차갑게 채소를 유지하는 셀프서비스 바가 있건, 천장이 높은 인테리어를 하건, 커피 머신을 제공하건, 돈을 내는 기본 목적인 음식의 품질이 그모양이면 화가 난다. 내가 채소 먹고 남의 애들 뛰노는 놀이터 구경하러 그 집에 간 것이 아니지 않는가. 삼천원도 아까운 점심이었다. 뿌득뿌득.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들이 주장하는 소셜 홍보 페이지들을 들어가봤다. 역시 고기 얘기는 거의 없거나, 그냥 그렇다는 평이 많다. 어떤 블로거들인지 모르겠지만, 등록되는 절차도 불투명한 걸 보니 그냥 아무나 해주지는 않을지언데, 고기 맛 평타라고 쓰는 것 보면 나만의 문제는 아니구나 싶다. 뿌드득.

오늘은 내가 진짜 파워블로거지였으면 좋겠다. @@

 

 

 

 

 

규제, 프로파간다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든다. 아무리 큰 사건이 발생해도 그 윤곽조차 제대로 잡지 못한 사이 다음 사건이 등장하는 참 다이나믹한 나라다. 곧 이어 강남역 살인사건, 계속 커지는 법조비리 사이에서 삼성전자 하청업체 횡포는 독립언론이나 집어낼 상황.

어쨌건 이런 사건들이 언급될때마다 ‘규제’라는 것이 행간에서 혹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옥시가 버젓히 살인 제품을 만들어서 십년 넘게 판매할 수 있었던 가장 표면적인 이유는 현 규제 체제에서 그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과 같이 복잡한 경우에도 내구연한을 넘긴 선박이 무리한 개조를 품고 악천후에 출발한 것도 규제의 완화, 구멍, 그리고 약한 실천이 큰 몫을 담당한다.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응도 규제(남녀공용화장실 금지, 조현병자 강제 입원 강화 등)이다.

계속 읽기 “규제, 프로파간다”

읽은 책 업데이트

전자책과 함께 패키징된 열린책들 세계문학 백여권 중 눈에 들어온 두 권은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와 루쉰의 아Q정전이었다. 나름 전자책에 적응하느라 희곡의 광활한 여백이 매력적이었고, 독해보다는 상상력이 주가 되는 읽기가 쉬워보였다. 아주 오래 전에 봤던 기억이 희미한 루쉰의 단편집은 그 짧은 호흡이 전자책 적응에 도움 될 것 같아서 선택했다.

둘 다 문학사적, 예술사적 의미가 그 작품 자체의 크기보다 훨씬 위대하다고 볼 수 있는, 혹은 그렇게 보통 읽지 않고도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책들이다. 고전의 반열에 든 작품들인만큼, 현대 시각에서도 깊은 울림이 있는 이야기의 풍성함은 당연지사. 예술사적 의미를 차치하고, 역시 고전은 그 자체로 끊임없이 생명력을 내뿜는다는 걸 새삼스럽게 되새기게 된다.

마지막으로는 5월 한달 동안만 한시적으로 무료 공개되는 책이 있어서 급히 다운로드 받고 끝까지 읽은 책이다. 518을 다룬 일종의 학술 개요서로 볼 수 있는데, 단지 몇십년 전의 우리 역사를 얼마나 잊고 사는지 다시금 두려운 마음이 든다. 현대 일본이 왜 침략 역사를 기억하지 않느냐는 물음은 적어도 광주를 잊고 사는 우리에게 언어도단이나 다름 없다. 도대체 독일은 어떤 노력을 기울였길래, 지금의 독일일 수가 있는 것일까…

세계 문학을 중심으로 전자책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사서 잘 들고다니기 어려운 한국식 양장 500 페이지 넘는 책들은 전자책으로 넘어가야겠다.

강남역 살인사건, 여성혐오와 구조적 문제

전적으로 동감하는 글. 남성이라는 구조적 우위 뿐만 아니라, 서울대라는 학벌, 법조계나 금수저와 같은 대표적 계급에도 적용 가능하고. 더 나아가서 하위 멸시가 점점 심해지고 세분화되는 계급 구조의 모든 구성원 (자살 일보 직전의 기저층을 제외한)에게 유의미한 글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현실 인식으로 이미 여성을 ‘잠재적 피해자’로 놓는 것에 익숙하다.

구조적 강자의 위치라면, 예를 들어 한국의 성차별 문제에서 남자라면, 대체로는 적당히 맷집으로 소화하면서 그 호명이 나오게 된 과정을 다시 살펴보고 무엇을 연대할 것인지 어떻게 문제를 고칠 것인지 각자 나름의 전문성을 활용하여 살펴보는 것이 좀 더 건설적인 대처인 것이다.

출처: capcold님의 블로그님

또 하나의 완전 공감해 마지 않고, 감탄하는 글: 여성혐오와 구조적 문제

여성 혐오, 여성 차별이 요즘 들어 특별히 늘어난 것은 아님. 오히려 과거보다 줄었을 것. 

앞으로 가만히 있지 않는 여성을 계속보게 될 것이고, 여러가지 불편한 일이 많을 것. 불편한 일이 많을 이유는 여성차별 구조가 매우 단단하고 전방위적이기 때문. 여성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할려면 직장, 가정, 학교,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을 바꿔야 함. 강남역에서 망자를 추모하기는 쉽지만 자신의 상식이 깨어지고 생활 방식이 바뀌는 것을 인내하는 것은 상당히 불편한 일임. 

출처: SOVIDENCE

블로그들에 이렇게 좋은 글이 많다.

전자책

웹 형태를 모니터나 더 작은 스크린으로 책을 볼 때 소위 Deep reading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경험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전자책의 경우 몰입이 가능하다는 연구도 있고, 상식적으로도 그럴 듯 하다. 아이패드 같은 류가 아니라 e-ink를 사용한 전자책은 눈의 피로도가 훨씬 덜하고, 사실 상 종이책을 보는 것 같은 수준의 해상도를 보이기 때문에 쓸만하다. 그래도 전자책으로 책을 본 사람들이 전체 볼륨을 요약하는데 더 어려움을 느낀다는 한계도 있다. (물리적인 페이지 두께, 내가 지금 보는 페이지가 전체의 어느 부분에 위치하는지에 대한 감각의 부재)

알라딘에서 세계문학 100권이 넘는 세트와 묶인 크레마 카르타를 구매했다. 나름 지금까지는 만족한다.

R1280x0

종이책의 구매와 보관이 주는 강력한 나르시즘과의 고된 싸움이 예상된다. ㅎㅎ

5.18.

반란, 내란, 폭동, 봉기, 사태, 민주화운동, 민중항쟁, 혁명, 해방, 인간사냥, 양민학살의 스펙트럼.

직접사망 165명 (사망 추정 65명과 상이 후 사망자 376명 제외), 부상 3139명, 구속 및 구금 등 후속 추가 피해자 1589명.  모두 빌어먹을 공식 기록일 뿐이다. 천단위 사망자가 충분히 가능한 상황

시위 참가자 최대 30만명 추정. 학생, 기층 계급, 전 시민이 참여한 사건. 출처: 나무위키

공수부대의 전시적(Demonstrative) 진압 및 실탄 발포를 동반한 학살이 상황을 초현실적으로 몰고 갔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임산부의 배를 갈라 죽였다는 증언이나 저격수들의 조준사격같이 베트남을 한국 한복판으로 끌고 들어온 무시무시한 현실. 본격적인 살인행위 이전에도 인륜을 벗어난 진압 활동에 대한 증언도 산처럼 쌓여있다. 차마 볼 수 없는 사진 기록들

현실감이 없다. 일제의 독립운동 탄압 만행보다 훨씬 강도가 센 비현실이고. 어느 동유럽이나 베트남, 아프리카 국가의 비극처럼 멀리 있다.

현실은 홍어 택배, 음모론, 발포명령자 특정 실패, 29만원으로 잘 사는 내란 수괴 등 오히려 패배와 굴복을 아로새긴 비참한 상황.

일제시대도, 이승만도 평가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광주를 이해할리 없다. 정면으로 응시하면 구토와 각혈과 추함으로 일그러지는 자신을 감당할 수 없다. 오직 문학으로만, 은유로만, 곁눈질로만 슬쩍 일부분을 드러내는 우리의 진짜 얼굴.

말도 안되는 상상

진짜 말도 안되는 상상이지만…

청와대, 국정원, 경총의 집회동원 커넥션이 네이처 뭐시기 사장의 법조계 돈 뿌린 것과 옥시 사태가 뒤늦게 떠올라서 뒤덮는 느낌이 든다. JTBC도, 사실 상 세월호 외에는 더 심각한 사태를 찾기도 어려운 옥시 사태를 제끼고 계속 어버이연합만 물고 있을 수는 없다.

설마 말도 안되는 상상일 뿐이다. 이 기회에 아바이연합도 털고 옥시도 털고 법조브로커랑 판검사도 털고 다 털자. 짭새는 뭐 안터뜨리나… 군납 비리랑 경찰비리 정도 나와주면 딱일 타이밍인데…

조선업 구조조정

나 같은 범부범부들에게는 잘나가던 조선업이 갑자기 구조조정의 위기에 치받혀 사람을 수만명 잘라야 산다는 정치권의 구호가 좀 갑작스러운 면이 있다. 정치권이 던지고 언론이 받는 어젠더들이야 더 이상 정치적일 수 없다는 게 요즘 상식인 상황에서, 좀 더 들여다 보고 싶은 찰라에 좋은 기사가 떴다.

프레시안 <조선업 빅딜? 왜 망하는 길로 가는가>

한진해운의 재벌가 오너 모럴 해저드와 겹쳐지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잘못된 경영 전략에 의한 손실을 왜 매번 노동자의 인건비로 때워야 하는지. 2009년 금융 위기의 핵심 질문이 그러한 구조를 고발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스레 다시 떠오른다.

오늘이 노동절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