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쿠바에 갔다

k892535614_1박세열 프레시안 기자가 쓴 쿠바 여행기박세열 프레시안 기자가 쓴 쿠바 여행기.

프레시안에는 국내 정치영역에서 종횡무진 기사를 쏟아내는 기자가 있다.  프레시안은 기사마다 기자의 모습을 작은 동그라미로 보여주는데, 수염을 기르고 오지를 여행하는 와중에 찍은 것 같은 사진이 인상적인 사람이 박세열 기자다.

다소 과도한 듯한 쿠바에 대한 낭만어린 시선이 책 전체를 보면 그런 느낌이 온다. 하지만 풋내기가 어디서 주워들은 글부스러기 몇 쪽을 가지고 겉면만 미끄러지듯 다녀온 감상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가 쌓아 온 애정에 비해 내가 쿠바에 대해 아는 것들이 월등히 적어서 발생하는 일일테다.

책도 깔끔하고, 사진들도 좋고, 글도 읽기 좋다. 이 책을 읽고 쿠바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아마도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말을 듣고 정신적인 위안을 얻겠다고 똥통같은 인도로 나서는 여대생일 가능성이 높다. 이 책은 오히려 다른 세상을 상상하라고 한다. 저자의 가슴 속에 있는 다른 세상은 쿠바에서 잠시 그 흔적을 보인다. 다른 세상을 상상할 수 있어야 현실 어디에선가 그 가능성이나 흔적을 발견할 수 있고, 그래야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움직임에 힘을 얻는다. 그런 좋은 책이다.

통계라는 무기

8962605953_151ui-zv3m7l-_sx324_bo1204203200_ 찰스 윌런이라는 경제 분야 저널리스트가 쓴 보통 사람을 위한 통계 관련 소품이 있다. 벌거벗은 통계학이라는 책인데, 제목이 좀 야리꾸리해서 원서를 찾아보니 “Naked Statistics”로 원래 야리꾸리한 제목이었다.

공식을 외우면서 고급수학까지 고등학교때 쫙 진도 빼는 한국 사람들은 다 접해봤던 이야기들이다. 다만 기억에 가물가물할 뿐이고다. 일부 공식이 드문드문 기억난다하더라도, 그게 현실에서 이런 의미인지는 몰랐을 공산이 크다. 고등학교때부터 결정되는 문과 트랙을 거쳐 온 사람들은 더더욱 이게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상상하기 힘들다. 문과는 애매한 수준의 지식을 공식을 외우는 형태로 주입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주 기본적인 ‘숫자’ 근거 자체의 함정부터 여론 조사 등에 쓰이는 통계와 관련된 기본적인 지식들, 그리고 그것을 의사결정에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흥미로운 사례들이 현실에 발을 딛고  이해를 놓치지 않도록 해준다. 사실 뉴스를 듣고 상황을 판단하고 자기 의견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논의를 나눌 때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는 수준의 교양이다. 마치 서로 소통하기 위해서 기본적인 한국어를 알아야 하는 것처럼 좀 더 높은 수준의 의견 교환을 위해서는 사고의 도구를 갖추고 나서야 한다. 불행히도 우리들은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한국 성인의 문해력 수준이 최저수준의 문맹률에도 불구하고 OECD 최하위라는 충격적인 사실은 국어는 국어대로, 문학은 문학대로, 수학은 수학대로, 물리는 물리대로 따로 외워대면서 성장한 성인이 책도 읽지 않고, 강렬한 구호에나 반응하며, 말초적인 유흥 문화 외 선택권 없는 상황에서, 상명하복하는 사회에서 살아 남다보니 발생한 당연한 귀결이다. 수학의 정석 공식들이 사실 상 사고하고 논의하는 도구라는 것을 배우지 못한다면 이런 상황은 바뀔리 없다.

이러한 교양은 더 건강하고 생산적인 조직을 만드는 데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드문드문 더듬어 가며 읽고 있는 네이트 실버의 ‘신호와 소음’을 보면 이런 도구를 장착한 재능있는 사람이 어떤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통계라는 도구를 가지고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마법은 보통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천재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일이 아님을 책은 보여준다. 차분히 따라가면 누구나 (물론 벌거벗은 통계학 정도의 도구는 가지고 있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다. 통계라는 도구를 능숙하게 활용하고 실제 주어진 문제 상황에 적절하게 적용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네이트 실버는 말한다.

나는  수학을 ‘양’을 맞기 시작하고 고등학교 때 요즘 말로 ‘수포자’의 삶을 살았다. 매번 시험에서 ‘양’이나 ‘가’를 맞으면서 왜 공부하는지 알 수 없었던 수학이 사실은 이렇게 쉽고 재미있고 강력하고 필수적인 도구였다는 것이 분하고 분하다.

 

네이트 실버의 책 초반에 2008년 미국 금융위기를 불러온 핵심 기업 중의 하나인 S&P 대표의 말을 전하면서 다음과 같은 통찰을 내보인다.

When you can’t state your innocence, proclaim your ignorance.

수많은 한국의 정치인들에게는 상식과 다름없는 좌우명 아닐까 싶다. “바보 아니면 개새끼” 선택 문제 아니겠는가.

로맹 가리, 닉 수재니스, 박노자

읽은 책들 업데이트: 언플래트닝, 로맹가리 소설, 박노자 에세이

UNFLATTENING, Nick Sousanis

교육학자이자 만화가, 예술비평가, 인문학 교수. 최초로 만화 형식으로 논문을 써서 박사를 받았다고 한다. 아주 새롭다. 만화를 훨씬 더 쉽게 그리게 해 주는 도구가 만들어진다면, 이 작가의 머리속에서 훨씬 많은 것들을 뽑아낼 수 있을 텐데 아쉬울 정도이다.
대충 이런 식이다. k192535814_03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 로맹 가리

로맹 가리가 노년에 남긴 사실감 넘치는 소설. 실제 이 소설을 출간한 이후 임포텐트가 된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 정도로 절절하다. 항상 좋은 소설이 그렇듯이 잘 짜여진 구도의 효과가 크다. 그러나 사실 읽는 내내 경탄하게 되는 것은 문장의 힘 때문이다. 가끔 담담하게 써내려가는 건조한 소설들을 읽다보면, 나도 뭔가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로맹 가리의 문장처럼, 번역을 거쳐도 지워지지 않는 깊은 울림과 어지러운 혼돈, 그 안에서 각자가 발견하는 의미를 엮어내는 솜씨를 보자면, 소설가 따위 될 수 없다는 확신에 절망하게 된다.

이 소설을 쓰고 에밀 아자르로 변신하게 된다고 한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죽이고 다시 태어난다는 점에서 성불구와 같은 디테일은 다르지만, 결국 본인의 절절한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다. 로맹가리는 다 읽어야 겠다. 어쩌면 내 안에서 카뮈를 대체할런지도 모르겠다.

 

주식회사 대한민국, 박노자

박노자라는 사람이 원래 한국어로 글을 쓰는 건지, 아니면 누군가 번역해주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블로그며 글들이며 고전 인용부터 한자어구까지 나보다 한국어와 한문에 훨씬 능한 사람이라는 건 확실하다. 우리나라에서 합법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시각을 가진 사람이기에 문제의식의 울림이 크다. 다만 갈수록 심해지는 신자유주의 신격화만 벗어난 다면 훨씬 좋은 글들이 될테다. 신자유주의는 대중적 에 쓰기에는 반감이 너무 크다. 게다가 신자유주의라는 어떤 실체가, 악의적이고, 용의주도하고, 말할 수 없이 무서운 존재가 있다고 오독하게 하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우리 하나하나가 매일매일 삶의 작은 선택들에서 지지하는 부분들이 모여 신자유주의의 큰 물결을 만드는 것이다. 어느 누군가가 갑자기 나타나 신자유주의를 이끌고 있지 않다. 해방되어야 할 민중들이 신자유주의의 일방적 희생자라는 시각 또한 너무 고루하다. 문제 의식의 신선함, 분노의 순수함을 가져오되, 반 신자유주의가 아닌 어떤 행동 지점을 찾아야 하는가를 고민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정말 좋은 책이다.

MUST READ

이런 사람, 이런 가족. 눈물이 계속 난다.

 

“저희는 돈을 벌러 간 게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도우러 간 것이지. 양심적으로 간 게 죕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타인한테 벌어지지 않길 바랍니다. 어떤 재난에도 국민을 부르지 마십시오. 정부가 알아서 하셔야 합니다.”(김관홍.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 2015년 9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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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식구의 세월호 기억목걸이.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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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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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추! 블록버스터가 될 수 있다! 영화 소개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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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럽게 후원하는 뉴스타파의 팀이 만들어낸 대한민국 첩보 블록버스터 무비, <자백>의 시사회에 다녀왔다.

동행한 아내는 이 영화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다. 뉴스타파가 뭔지도 모르고, 최승호가 어떤 사람인지, 국정원의 간첩조작사건이 도대체 언제적 일인지도 모른다. 심지어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인지 애니메이션인지 실사영화인지도 모르고 그저 따라왔다. 영화 소개 링크와 함께 ‘빨갱이 영화’라는 힌트를 주고, 이거 같이 보러가면 국정원에 이름 오를지도 모른다는 협박을 날렸지만 결국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고 왔다. 시사회 티켓을 받고 나오는데 최승호 감독이 서서 사람들과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나도 들뜬 마음으로 사진을 같이 찍고 나오는데, 아내는 포스터에 있는 주연배우였냐며 묻는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그렇게 영화는 시작했다.

아내의 관점에서 결론부터 말하면 ‘영화가 재미있다!’는 것이다. 나처럼 영화에서 다루는 사건에 대해 알고 있거나, 이미 분노할 준비가 된 사람이 아니다. 딱히 다큐멘터리나 진보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영화에 취향을 가지고 있는 관객도 아니다. 그저 영화를 만나는 일반적인 관객 중 한명으로서 본 감상은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라는 것이다. 스포트라이트와 같이 영화가 설정한 한계 내에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고, 분노할 수 있으며, 사건 전개에 흥미진진하게 몰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서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공명하느라 바쁜 트위터 안의 의미 없는 폭풍과 같을까봐 걱정했었는데, 아내의 반응을 보니 최승호 감독이 제대로 한 건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영화는 영화적 재미를 만들어내기 위한 다양한 장치들이 눈에 띄었다. 작게는 인터뷰와 자료 화면으로 등장인물이나 사건을 다루는 교묘한 유머들부터, 크게는 한국, 중국, 북한을 오가는 지리적 이동과 같은 등장인물로 70년대와 현재를 가로지르는 구성까지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간첩조작사건의 취재 중에 발견하게 된 한 탈북자의 의문의 죽음까지 가세하여 두 개의 사건이 영화가 품고 있는 시공간을 누빈다. 남한의 안기부 – 국정원, 북한의 보위부가 한 탈북자 가족을 가운데 두고 벌이는 거울상의 비극은 두 조직의 초법성과 잔인성에서 차이점이 없다고 웅변한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기는 예술이 가지는 중요한 무기다. 이 영화는 익숙하게 생각하는 2016년의 또 다른 현실을 드러내며 낯선 시대로 탈바꿈시킨다. 가장 큰 영화적 재미는 현실에 대한 낯설게 하기가 성공하는데서 온다. 또랑또랑하고 아이를 어르듯이 부드럽게 말을 거는 이시원 검사의 유가려씨 심문 녹음은 연출된 극인지 현실인지를 판단할 수 없는 지점으로 관객을 몰아부친다. 분명 현실인데 사람이 죽고 은폐된다. 때가 어느 때인데 냉전 시대의 KGB를 언급하며 알려줄 수 없다는 당당한 코멘트를 한다. 유가려씨의 증언은 너무나 극적이라 현실감이 없다. 이것을 현실이라 증명해주는 역할은 오히려 현실을 가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사실을 말하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도망다니는 사람들이 도맡고 있다. 영화처럼 중국을 간다. 설마 설마 했지만 한 나라의 정보기관의 문서 위조 수준은 조악하기 이를 데 없다. 위조의 결과가 백일 하에 드러나고, 사주를 받은 조선족까지 자살을 시도하는 마당에 검찰은 끝까지 문서가 진실이라 믿는다고 강변한다. 검사는 웃으며 재판에서 하는 말이나 들으라고 코멘트를 반복한다. 국정원 소속으로 탈북자들을 고문하는 직업을 가진 남녀는 기자에게 노출되는 것도 모자라 기자 대응 수칙도 교육받지 못했는지 도망다니기 바쁘다. 누가 쓴 시나리오인지 참 박진감 넘친다.

다큐멘터리만이 줄 수 있는 재미와 감성에도 충실하다. 김기춘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질문을 던지다가 분노를 참는 모습, 영화의 후반부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사과할 생각이 없냐고 윽박지르는 모습은 마이클 무어가 격한 감정을 이끌어내는 데 잘 쓰는 도발적인 인터뷰 장면과 겹친다. 도망가는 국정원 직원의 차를 가로막고 질문을 던지는 모습도 그렇다. 김기춘의 작품으로 안기부에서 고문받고 거짓자백한 피해자들이 재심으로 무죄를 받고 법원을 나서는 장면은 신문지상의 한꼭지에 불과했던 뉴스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생생하게 전달한다. 개인적으로 고문 후유증으로 일본에서 정신줄을 놓고 연명하고 있는 재일 조선인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참지 못했다. 어떤 것으로도 납득할 수 없는 국가의 폭력이 남긴 상흔. 다이아스포라로서 외지인의 낙인이 뚜렷한 재일 조선인에게 가한 또 다른 폭력. 고국을 선택하고 자신의 총명함을 증명한 사람에게 밀어닥친 거대한 불행. 그 같은 지성인에게는 납득할 수 없는, 그리고 말할 수 없이 굴욕적인 흉터를 절대로 해소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그 상황에 놓인다면 나는 겉으로나마 온전히 살아남은 그의 동료들같이 될 수 없다. 나는 죽거나 정확하게 그의 길을 걸었을 테다. 그런 마음이 들어서 눈물이 계속 흘렀다. 그렇게 다큐멘터리만이 가지는 강력한 호소력도 이 영화는 놓치지 않는다.

다음 스토리펀딩, 웹 상에서의 긍정적인 반응에 더해 시사회도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뉴스타파 측은 완전히 새로운 기회에 다가서고 있다고 판단한 듯 하다. 실제로 찻잔 속의 폭풍과 같은 기존 뉴스타파 플랫폼의 영향력과 영화화한 다큐의 접근성과 파괴력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적극적인 인터넷 여론 호도를 부탁하고(국정원 댓글부대와의 일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공개적으로 멀티플렉스의 개봉 참여를 압박한다. 시사회 이후 최승호 감독도 이번에야 말로 세상을 바꾸는 시민의 힘을 보여줄 수 있다고 단호한 자신감을 보이며 더 큰 참여를 당부한다. 영화적 재미를 볼 때 멀티플렉스 개봉을 정권 차원에서 직접적으로 막지 않는 이상, 이전에 생각할 수 없는 수준의 외연 확대를 만들 것은 확실해 보인다. 부디 이 기회에 얻은 힘을 현명하게 쓸 수 있으면 좋겠다. 뉴스타파에 후원하는 사람도 이제 제발 4만명이 훌쩍 넘었으면 좋겠다.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영화 안에서 국정원의 고문과 자백 강요로 자살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탈북자의 딸과 접촉하는 장면이 있다. 북한 내에서 살고 있는 17~18세의 어린 소녀다. 북한에서 그 나이대의 소녀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누구인지도 모를 사람에게서 온 전화로, 그것도 통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는 것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결과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전해 듣는 것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고 가혹할까 걱정이 앞섰다. 순간 세월호 유가족에게 방송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코멘트를 받기 위해 무례한 질문을 날리는 어느 종편 기자가 생각났다. 영화적으로 더 공감을 이끌어내려면 차라리 기자가 아닌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소식을 전했으면 어떨까 싶다. 남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남한에서 심문을 받다가 자살했다는 걸 그대로 전해야만 했을까. 그저 꼭 알려주고 싶어서, 겨우겨우 찾아서 연락했다고, 아버지는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마지막까지 너를 걱정하고 마음을 썼다고 말해주면 안됐을까. 우리나라가 그 아이에게 어떤 짓을 한 것인지, 우리는 도대체 이 낯선 현실을 모른 채 무엇에 가담하고 있었는지 더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한국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심문을 받다가 자살했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가 공감할 공간은 없고 그저 분노할 대상만을 남기게 된다. 영화 안에서 가장 큰 옥의 티같은 장면이었다.

또 하나는 시사회 이후 최승호 감독의 발언 중에서 발견한 옥의 티이다. 영화에 등장한 사건들에 부연 설명을 하다가 그는 우리나라 사법부를 통칭하여 비난하는 발언을 한다. 맥락 상 당연히 자연스럽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부 차원에서 진행한 과거사 재심이 아니었으면 그 사법부가 알아서 기었을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러나 사법부는 그나마 가끔가다가 올바른 결단을 내릴 줄 아는 사람들이 있어왔다. 일관되게 수십년에 걸쳐 선배들과 일심동체로 움직이는 검찰 조직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런 기술적인 차이가 아니다. 얼마 전에 읽었던 책 중에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이라는 유쾌한 책이 있다. 세르비아의 혁명에 비폭력 운동으로 참여했던 저자는 진보 세력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로 옳은 소수 중심의 선명성을 든다. 분명히 맞는 방향이고 올바른 주장이지만, 그것 자체로는 사람들의 힘을 모을 수 없다. 하다못해 극좌들도 모든 인민을 아우르는 것보다 무력 혁명에 기대야한다는 판단을 했을까. 진보 세력이 힘을 얻기 위해서는 선명한 주장보다 외연을 확장하여 품을 수 있는 어젠다들이 훨씬 중요하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가득 찬 영화관이다. 거기에는 뉴스타파가 오프 모임을 한다고 해서 거기까지 달려오는 사람들 외부에 있는 관객들도 있다. 그들에게 최승호 감독의 사법부 조롱은 어떻게 들릴까? 전혀 필요 없는 언급일 뿐만 아니라, 영화가 가진 훌륭한 점들을 가려버릴 수 있는 위협적인 발언이다. 결국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는 재미 있는 영화를 통해 왔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선명한 주장, 우리 편에 더 작은 수의 사람만을 품게 되는 선긋기는 지금껏 반복해 온 실패를 보장할 뿐이다. 수만명, 수십만명이 영화를 볼 때 사법부 사람, 혹은 판사를 가족으로 둔 사람이 없겠는가. 어떤 경우에도 이 영화가 성공적일 수 있는 이유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

재미있고, 감동적이고, 분노와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 그러면서 이 영화 이후를 더욱 기대하게 하는 멋진 경험이었다. 모두에게 강추하는 영화, 최승호 감독의 <자백>이다.

[추가] 최승호 감독을 실제로 보니, 이 사람이 지닌 뚝심과 힘이 그대로 느껴졌다. 차를 막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분이다. 화면에서 볼 때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크다.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실제로 마주친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그의 건승을 빈다.

영화 말미에 지금까지 드러나거나 재심이 이루어진 국정원의 간첩조작 사건들이 하염없이 화면을 채운다. 영화 <Spotlight>의 사제 성추문 사건 목록 엔딩과 같다. 정치개입과 용공조작은 국정원의 공식 역사 기록으로 보인다. 스팟라이트와 다른 점은 우리는 사십여년에 이르는 시간 속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뉴스타파가 보스턴 글로브가 되기를 기원한다.

영화 엔딩 크레딧에 내 이름도 나온다.

 

 

 

 

읽은 책 업데이트

중국식 룰렛, 은희경

표제와 동명 소설은 아주 재미있다. 장미의 왕자, 대용품까지도 흥미진진하다. 별의 동굴이나 정화된 밤은 내가 공감하기 좀 어려웠다. 이름값이 있는 작가라 그런지 신선한 시도는 별로 없고, 그렇다고 굵직한 힘도 별로 느껴지기 어려운 애매한 길이의 애매한 소설들.

 

축적의 시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부제가 ‘서울공대 26명의 석학이 던지는 한국 산업의 미래를 위한 제언’이다. 사실 서울 공대 교수들이면 제언만 하고 앉아있을 분들은 아닐텐데 뭔가 좀 한가로운 제목같다. 서울대 법대가 세상을 어떻게 망치는지 부쩍 느끼고 있는 요즘, 서울대 의대가 얼마나 자뻑 질환 대마왕들의 놀이터인지를 알게 된 요즘 서울대 공대 교수들의 제언이라니 영 달갑지 않다. 서울대 나왔지만 사는 게 버거운 나로서는 뒤늦게 알게되는 서울대 패권이 여러 모로 부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그냥 교수들의 자화자찬 인터뷰를 모은 책으로는 말도 안되는 비싼 가격(2만 8천원?)임에도 사서 본 이유는 어디선가 본 토막 소개글 때문이다. 한국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축적이 가능한 구조를 확보해야 한다는 문장이었다. 나름 괜찮은 인사이트라고 생각한다. 특히 여러 모로 한국의 산업 발전에 공헌했고(공헌이라 쓰고 공범이라 읽어도 무방), 세계 무대에서 겨루는 분들이 줄 수 있는 의미 있는 지적이라고 봤다. 그런데 막상 책을 펴보고 나니, 인터뷰 모음집의 한계인지, 아니면 애초에 그냥 자기 분야의 대가인 공돌이가 전문분야를 벗어난 훈수둘 때 나오는 부작용인지 도대체 건질 게 하나도 없다. 공범으로 참여한 과거에 대한 분석은 없다. 산업 경쟁력의 가장 주된 주체인 기업에 대한 비판은 전무하고, 기업의 변화를 암시하는 어젠다도 거의 없다. 그저 학생들이 야심이 없고 창의적이지 않으며, 정부는 헛돈쓰고 있을 뿐이고, 기업님들은 좀 더 학계랑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말들뿐. 결국 이놈저놈 만만한 놈들이 잘못했고, 돈줄 쥔 사람들이 자기 좀 쳐다봐줬으면 하는 작은 소망들 뿐이다. 중간중간 자화자찬.

몇몇 교수들이 본인들의 작은 시도와 성취를 확장하고자 하는 시도들은 의미 있어 보인다. 번득이는 통찰도 분명 군데군데 묻어난다. 그러나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시야, 비판적 성찰이 아쉽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해관계자이자, 기여자이자, 주인공인 기업에 대한 제언이 거의 없다는 점이 정부와 학생, 그리고 돈줄을 쥔 사람들에 대한 푸념으로 이 책을 격하시키고 있음이 안타깝다.

춘천 여행

 

막국수로 시작해서 막국수로 끝난 여행.

분당에도 분점이 있는 장원 막국수. 아주 거칠지 않은 식감의 메밀면과 진짜 부드러운 삼겹살 수육. 수육을 빼놓으면 안됨.

다음날 아침, 다시 막국수를 먹기 위해 칼로리를 태울 거리를 찾다가 소양강댐으로 고고. 나름 극적인 자태로 소양호와 하류의 대비를 만들고 있음. 얇은 빗방울 사이로 산책로를 지나 정자 위에서 소양호 신선놀음.

근처의 샘밭 막국수. 춘천까지 왔는데 닭갈비가 아쉬워서 둘 다 하는 집을 선택. 갈비를 잘 떼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키운 닭을 숯불에 구워먹으니 처음 맛보는 환상적인 고기구이. 지방과 숯불의 조합은 언제나 진리. 살짝 단맛이 돌지만 그래서 닭갈비와 같이 먹기 더욱 좋은 막국수 한그릇도 최고. 분당에 분점이 생긴다니 꼭 재방문 필요.

터지는 배를 부둥켜 안고 길 막히기 전에 헐래벌떡 귀가. 딱 24시간 걸린 최고로 알찬 막국수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