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추! 블록버스터가 될 수 있다! 영화 소개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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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럽게 후원하는 뉴스타파의 팀이 만들어낸 대한민국 첩보 블록버스터 무비, <자백>의 시사회에 다녀왔다.
동행한 아내는 이 영화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다. 뉴스타파가 뭔지도 모르고, 최승호가 어떤 사람인지, 국정원의 간첩조작사건이 도대체 언제적 일인지도 모른다. 심지어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인지 애니메이션인지 실사영화인지도 모르고 그저 따라왔다. 영화 소개 링크와 함께 ‘빨갱이 영화’라는 힌트를 주고, 이거 같이 보러가면 국정원에 이름 오를지도 모른다는 협박을 날렸지만 결국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고 왔다. 시사회 티켓을 받고 나오는데 최승호 감독이 서서 사람들과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나도 들뜬 마음으로 사진을 같이 찍고 나오는데, 아내는 포스터에 있는 주연배우였냐며 묻는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그렇게 영화는 시작했다.
아내의 관점에서 결론부터 말하면 ‘영화가 재미있다!’는 것이다. 나처럼 영화에서 다루는 사건에 대해 알고 있거나, 이미 분노할 준비가 된 사람이 아니다. 딱히 다큐멘터리나 진보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영화에 취향을 가지고 있는 관객도 아니다. 그저 영화를 만나는 일반적인 관객 중 한명으로서 본 감상은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라는 것이다. 스포트라이트와 같이 영화가 설정한 한계 내에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고, 분노할 수 있으며, 사건 전개에 흥미진진하게 몰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서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공명하느라 바쁜 트위터 안의 의미 없는 폭풍과 같을까봐 걱정했었는데, 아내의 반응을 보니 최승호 감독이 제대로 한 건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영화는 영화적 재미를 만들어내기 위한 다양한 장치들이 눈에 띄었다. 작게는 인터뷰와 자료 화면으로 등장인물이나 사건을 다루는 교묘한 유머들부터, 크게는 한국, 중국, 북한을 오가는 지리적 이동과 같은 등장인물로 70년대와 현재를 가로지르는 구성까지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간첩조작사건의 취재 중에 발견하게 된 한 탈북자의 의문의 죽음까지 가세하여 두 개의 사건이 영화가 품고 있는 시공간을 누빈다. 남한의 안기부 – 국정원, 북한의 보위부가 한 탈북자 가족을 가운데 두고 벌이는 거울상의 비극은 두 조직의 초법성과 잔인성에서 차이점이 없다고 웅변한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기는 예술이 가지는 중요한 무기다. 이 영화는 익숙하게 생각하는 2016년의 또 다른 현실을 드러내며 낯선 시대로 탈바꿈시킨다. 가장 큰 영화적 재미는 현실에 대한 낯설게 하기가 성공하는데서 온다. 또랑또랑하고 아이를 어르듯이 부드럽게 말을 거는 이시원 검사의 유가려씨 심문 녹음은 연출된 극인지 현실인지를 판단할 수 없는 지점으로 관객을 몰아부친다. 분명 현실인데 사람이 죽고 은폐된다. 때가 어느 때인데 냉전 시대의 KGB를 언급하며 알려줄 수 없다는 당당한 코멘트를 한다. 유가려씨의 증언은 너무나 극적이라 현실감이 없다. 이것을 현실이라 증명해주는 역할은 오히려 현실을 가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사실을 말하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도망다니는 사람들이 도맡고 있다. 영화처럼 중국을 간다. 설마 설마 했지만 한 나라의 정보기관의 문서 위조 수준은 조악하기 이를 데 없다. 위조의 결과가 백일 하에 드러나고, 사주를 받은 조선족까지 자살을 시도하는 마당에 검찰은 끝까지 문서가 진실이라 믿는다고 강변한다. 검사는 웃으며 재판에서 하는 말이나 들으라고 코멘트를 반복한다. 국정원 소속으로 탈북자들을 고문하는 직업을 가진 남녀는 기자에게 노출되는 것도 모자라 기자 대응 수칙도 교육받지 못했는지 도망다니기 바쁘다. 누가 쓴 시나리오인지 참 박진감 넘친다.
다큐멘터리만이 줄 수 있는 재미와 감성에도 충실하다. 김기춘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질문을 던지다가 분노를 참는 모습, 영화의 후반부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사과할 생각이 없냐고 윽박지르는 모습은 마이클 무어가 격한 감정을 이끌어내는 데 잘 쓰는 도발적인 인터뷰 장면과 겹친다. 도망가는 국정원 직원의 차를 가로막고 질문을 던지는 모습도 그렇다. 김기춘의 작품으로 안기부에서 고문받고 거짓자백한 피해자들이 재심으로 무죄를 받고 법원을 나서는 장면은 신문지상의 한꼭지에 불과했던 뉴스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생생하게 전달한다. 개인적으로 고문 후유증으로 일본에서 정신줄을 놓고 연명하고 있는 재일 조선인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참지 못했다. 어떤 것으로도 납득할 수 없는 국가의 폭력이 남긴 상흔. 다이아스포라로서 외지인의 낙인이 뚜렷한 재일 조선인에게 가한 또 다른 폭력. 고국을 선택하고 자신의 총명함을 증명한 사람에게 밀어닥친 거대한 불행. 그 같은 지성인에게는 납득할 수 없는, 그리고 말할 수 없이 굴욕적인 흉터를 절대로 해소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그 상황에 놓인다면 나는 겉으로나마 온전히 살아남은 그의 동료들같이 될 수 없다. 나는 죽거나 정확하게 그의 길을 걸었을 테다. 그런 마음이 들어서 눈물이 계속 흘렀다. 그렇게 다큐멘터리만이 가지는 강력한 호소력도 이 영화는 놓치지 않는다.
다음 스토리펀딩, 웹 상에서의 긍정적인 반응에 더해 시사회도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뉴스타파 측은 완전히 새로운 기회에 다가서고 있다고 판단한 듯 하다. 실제로 찻잔 속의 폭풍과 같은 기존 뉴스타파 플랫폼의 영향력과 영화화한 다큐의 접근성과 파괴력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적극적인 인터넷 여론 호도를 부탁하고(국정원 댓글부대와의 일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공개적으로 멀티플렉스의 개봉 참여를 압박한다. 시사회 이후 최승호 감독도 이번에야 말로 세상을 바꾸는 시민의 힘을 보여줄 수 있다고 단호한 자신감을 보이며 더 큰 참여를 당부한다. 영화적 재미를 볼 때 멀티플렉스 개봉을 정권 차원에서 직접적으로 막지 않는 이상, 이전에 생각할 수 없는 수준의 외연 확대를 만들 것은 확실해 보인다. 부디 이 기회에 얻은 힘을 현명하게 쓸 수 있으면 좋겠다. 뉴스타파에 후원하는 사람도 이제 제발 4만명이 훌쩍 넘었으면 좋겠다.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영화 안에서 국정원의 고문과 자백 강요로 자살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탈북자의 딸과 접촉하는 장면이 있다. 북한 내에서 살고 있는 17~18세의 어린 소녀다. 북한에서 그 나이대의 소녀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누구인지도 모를 사람에게서 온 전화로, 그것도 통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는 것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결과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전해 듣는 것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고 가혹할까 걱정이 앞섰다. 순간 세월호 유가족에게 방송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코멘트를 받기 위해 무례한 질문을 날리는 어느 종편 기자가 생각났다. 영화적으로 더 공감을 이끌어내려면 차라리 기자가 아닌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소식을 전했으면 어떨까 싶다. 남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남한에서 심문을 받다가 자살했다는 걸 그대로 전해야만 했을까. 그저 꼭 알려주고 싶어서, 겨우겨우 찾아서 연락했다고, 아버지는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마지막까지 너를 걱정하고 마음을 썼다고 말해주면 안됐을까. 우리나라가 그 아이에게 어떤 짓을 한 것인지, 우리는 도대체 이 낯선 현실을 모른 채 무엇에 가담하고 있었는지 더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한국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심문을 받다가 자살했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가 공감할 공간은 없고 그저 분노할 대상만을 남기게 된다. 영화 안에서 가장 큰 옥의 티같은 장면이었다.
또 하나는 시사회 이후 최승호 감독의 발언 중에서 발견한 옥의 티이다. 영화에 등장한 사건들에 부연 설명을 하다가 그는 우리나라 사법부를 통칭하여 비난하는 발언을 한다. 맥락 상 당연히 자연스럽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부 차원에서 진행한 과거사 재심이 아니었으면 그 사법부가 알아서 기었을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러나 사법부는 그나마 가끔가다가 올바른 결단을 내릴 줄 아는 사람들이 있어왔다. 일관되게 수십년에 걸쳐 선배들과 일심동체로 움직이는 검찰 조직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런 기술적인 차이가 아니다. 얼마 전에 읽었던 책 중에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이라는 유쾌한 책이 있다. 세르비아의 혁명에 비폭력 운동으로 참여했던 저자는 진보 세력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로 옳은 소수 중심의 선명성을 든다. 분명히 맞는 방향이고 올바른 주장이지만, 그것 자체로는 사람들의 힘을 모을 수 없다. 하다못해 극좌들도 모든 인민을 아우르는 것보다 무력 혁명에 기대야한다는 판단을 했을까. 진보 세력이 힘을 얻기 위해서는 선명한 주장보다 외연을 확장하여 품을 수 있는 어젠다들이 훨씬 중요하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가득 찬 영화관이다. 거기에는 뉴스타파가 오프 모임을 한다고 해서 거기까지 달려오는 사람들 외부에 있는 관객들도 있다. 그들에게 최승호 감독의 사법부 조롱은 어떻게 들릴까? 전혀 필요 없는 언급일 뿐만 아니라, 영화가 가진 훌륭한 점들을 가려버릴 수 있는 위협적인 발언이다. 결국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는 재미 있는 영화를 통해 왔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선명한 주장, 우리 편에 더 작은 수의 사람만을 품게 되는 선긋기는 지금껏 반복해 온 실패를 보장할 뿐이다. 수만명, 수십만명이 영화를 볼 때 사법부 사람, 혹은 판사를 가족으로 둔 사람이 없겠는가. 어떤 경우에도 이 영화가 성공적일 수 있는 이유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
재미있고, 감동적이고, 분노와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 그러면서 이 영화 이후를 더욱 기대하게 하는 멋진 경험이었다. 모두에게 강추하는 영화, 최승호 감독의 <자백>이다.
[추가] 최승호 감독을 실제로 보니, 이 사람이 지닌 뚝심과 힘이 그대로 느껴졌다. 차를 막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분이다. 화면에서 볼 때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크다.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실제로 마주친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그의 건승을 빈다.
영화 말미에 지금까지 드러나거나 재심이 이루어진 국정원의 간첩조작 사건들이 하염없이 화면을 채운다. 영화 <Spotlight>의 사제 성추문 사건 목록 엔딩과 같다. 정치개입과 용공조작은 국정원의 공식 역사 기록으로 보인다. 스팟라이트와 다른 점은 우리는 사십여년에 이르는 시간 속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뉴스타파가 보스턴 글로브가 되기를 기원한다.
영화 엔딩 크레딧에 내 이름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