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 시절

e932436027_2 [eBook] 버마 시절 – 열린책들 세계문학 103
조지오웰, Burmese Days

[1984]의 놀라운 통찰은 언제 봐도 소름이 끼친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함께 가히 수백년을 가로지르는 묘사에 성공하는 작품이다. [동물농장] 또한 풍자를 어떻게 고전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고전이다. 물론 동물농장을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 도구로 쓰면서 조지오웰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진 사람이 많기도 하지만. 그거야 애덤 스미스에 대한 굳건한 오해나 왜곡보다야 덜한 일이고.  늘 그렇듯 수구적 공세는 바보이거나 개새끼이거나를 선택해야 하는 마무리에 이르기 마련이다.

조지오웰은 소설가로도 큰 족적을 남겼지만, 기자로서 글 훈련을 했던 사람이다. 소설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여 영어로 읽어도 큰 어려움이 없는 쉬운 문장과 단어들을 쓴다. 그러나 평론이나 서평들은 한국어로 번역된 것을 읽어도 만만치 않은 어려움이 있다. 현대의 명문장가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극찬하고 롤모델로 삼았던 조지오웰의 문장은 히친스의 것 만큼이나 다른 문화권 독자에게 큰 문화적 소양의 벽을 친다.

버마시절은 다행이도 1984만큼이나 부드럽고 쉽게 읽히는 소설이다. 작가의 인도 파견 군인 시절의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작품 안의 다양한 버마 거주 영국인들은 작가가 버마에서 맞딱드린 현실에 반응하는 다양하고 분열적인 자아들로 빚어져 있다. 역시 그의 다른 작품들처럼, 큰 줄기의 이해하기 쉬운 서사가 간명한 묘사를 만나 이야기를 술술 끌고 간다. 그리고 역시 다른 작품들처럼, 이상적인 주장의 현실적인 실패로 주제를 드러낸다.

좋은 작품일수록 다양한 맥락에서 빛을 발한다. 이 짧은 소품같은 소설 하나로 서구인들의 근대 경험의 일면과 그 유산을 볼 수 있다. 또 우리 안에 자리잡은 오리엔탈리즘도 자극한다. 그것의 도착된 형태인 적극적인 제국주의 협력자들의 순수한 심상도 그려볼 수 있다. 우리 안의 작은 서구가 다른 아시아 동족들에게 가하는 폭력의 근원도 본다. 근대를 자각하며 기형적인 정체성을 구축한 일본의 절박함도 엿보이고, 진보라는 흐름에 반동하는 기득권의 모습도 떠오른다. 우리 나라에서 버마와 미얀마를 오가는 국가 이름의 변천도 되돌아 보게 한다. 결국 영국이 떠난 버마가 미얀마를 거쳐 다시 아웅산 수치의 귀환으로 그려지는 회복의 역사도 본다. 그러나 그 역사 또한 직선으로 그어져 있기에 조지오웰의 통찰이 필요한 장면일지 모른다. 우리가 잘 모르는 인종, 종교 갈등이 민주 투사 아웅산 수치와 겹쳐질 때 우리는 또 다른 영국인, 또 다른 군부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점점 더 전자책에 익숙해져 간다. 좋은 책이 있으면 종이책보다 휴대가 편하고 어디서나 읽을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으로 다가온다. 나중에 집에 서재를 만들게 되면 또 생각이 달라지려나. 알 수 없다. 변화는 항상 방향성이 있고 불가역적이지 않은가. 지켜볼 일이다.

댓글 남기기